풍습·유물로 본 삼국시대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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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4-15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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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대부분 삶과 죽음의 영속성(永續性)을 믿지 않는다. 현대인에게 삶은 일회적인 것이어서 죽음으로 단절된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고대 한국인들은 죽음을 통해 삶을 파악했고, 삶의 일부분으로 죽음을 사고했다. 예를 들어 고구려인들은 남녀가 결혼을 하면 ‘송종지의(送終之衣), 즉 상장례(喪葬禮)용 옷을 만드는 풍습이 있었다. 결혼과 동시에 죽음을 준비했던 것이다. 삶과 죽음이 불가분의 관계로 이어진다고 보는 관념의 반영이었다. 나희라(사진) 진주산업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고대 한국인의 생사관’(지식산업사)에선 오늘날 우리와는 무척 다른 생사관을 갖고 있었던 조상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여기서 고대 한국이란 청동기시대 이래 만주와 한반도 일대의 초기 역사를 지칭한다).

◆영혼에 대한 태도 = 고대 한국인들은 죽은 자와 죽은 자의 영혼에 대해 ‘애정과 공포’라는 상반된 두 가지 태도를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사체를 보존하기도 하고, 사체를 방기하거나 파괴하는 관습이 공존했다.

일반적으로 고대 한국인은 사후 영혼이 저승으로 가서 현세와 똑같은 삶을 누릴 것이라는 계세(繼世)사상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영혼의 불멸을 보증하기 위해 사체와 사후 거주처인 무덤을 보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부여에서는 사체를 야산에 버려 썩게 내버려두는 것이 징벌이기도 했으며, 사체의 보존을 중시해 여름에는 얼음을 사용하기도 했다. 무덤을 만들어 사체를 안치하고 사체의 훼손을 두려워했던 것은 육체의 보존이 영혼의 보존이라는 관념에 바탕을 둔 것이다.

신라나 가야 지역의 무덤에서는 배 모양, 새 모양, 말 모양, 신발 모양 토기 등이 종종 부장(附葬)됐다. 이들은 모두 이동이나 운송 수단을 흉내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새나 배는 여러 문화권에서 영혼의 운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저승은 어디에 = 죽은 자의 영혼의 행방에 대한 인간의 사고방식은 초기엔 대체로 영혼이 생전에 살던 곳 주변에 머문다고 생각했다가 차츰 이승과 동떨어진 어딘가에 머문다고 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대 한국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적 세계관에는 신계(神界)를 비롯, 인간계와 사후세계가 수직적으로 구성된 우주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또 한국 무가(巫歌)에 나타나는 신계와 저승은 인간계에서 오랫동안 걸어서 도달하는 곳으로 설정돼 있는 경우가 많다. 무속에서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는 의례에서도 이승과 저승은 흔히 평면적인 공간으로 이동함으로써 왕래가 가능한 곳으로 나타난다.

인간세계 저 너머에 존재하는 해양타계(海洋他界)관도 있다. 고대 한국에서 해양타계관을 보여주는 자료들 대부분은 사후세계라는 의미보다 이상세계에 가깝다. ‘수로부인 용궁왕래 설화’에서 바다 속 세계는 칠보(七寶)로 장식된 궁전이 있으며 온갖 맛난 음식이 있고 향기가 나는 곳으로 묘사된다.

◆결혼과 상장례의 결합 = 현대인의 의례관념에서 결혼과 상장례는 서로 밀접하지 않다. 결혼은 기쁜 날이고 상장례는 슬픔을 표현해야 하는 의례로서 오히려 적대적 감정의 양자택일적 의례로 여겨진다. 그러나 원시나 고대인들의 관념에서 결혼과 죽음은 적대적이지 않았다. 고구려인들이 결혼과 함께 상장례 옷을 마련했던 것처럼 장례 때 결혼의식 일부를 채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 얼굴에 연지를 찍고, 수의로 혼례복을 입히는 경우도 있었다.

또 전남 진도지역의 민속에선 출상 전날에 벌이는 상여놀이 가운데 ‘다시래기’라는 과정이 있다. 여기서는 적극적으로 성희(性戱)를 즐기고 새 생명의 출산과정을 구체적으로 연출하는 놀이가 펼쳐진다.

나 교수는 “결혼과 동시에 죽음을 준비하는 (고구려인의) 습속은 ‘인생의 통과의례는 죽음과 재생을 거쳐 이루어진다’는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고대인은 삶과 죽음이 연속적이며 상보적(相補的)인 것이라고 여겼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