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명예 때문에 250년간 계속된 싸움… ‘조선의 묘지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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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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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간에 250년이나 끌어온 소송이 2010년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소송 원인은 묏자리였다. 파평 윤씨가에서는 조상인 고려 재상 윤관의 묘 위치를 잃어버려 옛 기록을 토대로 그의 묘를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경기도 파주에서 묘갈(墓碣·무덤 앞에 세우는 둥그스름한 작은 비석) 파편을 발견해 묘지 위치를 확인한다. 하지만 바로 위쪽에 청송 심씨 심지원의 묘가 위치해 있었다. 윤씨가에서는 심씨가에 심지원 묘의 이장을 요구했지만 심씨가에서는 이장할 수 없다고 맞선다. 양측이 한 치의 양보 없이 대립하며 조정을 어지럽히자 영조는 이들을 직접 심문해 형장을 치고 귀양까지 보냈다. 대체 이들은 무엇 때문에 왕의 진노까지 사면서 250년 동안 싸움을 계속한 것일까. 그건 유교 의식에 기반을 둔 가문의 명예 때문이다.

이처럼 분묘 및 그 주변 산지를 놓고 일어나는 소송이 산송(山訟)이다. 산송은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고, 이웃하는 중국과 일본에도 없는 조선 후기 사회만의 특징적인 역사 현상이었다. 고문서를 유려한 요즘 말로 번역한 문장은 옛사람들의 시시비비를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한다.

조선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