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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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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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몰랐다. 10년 전 체코 프라하를 갔을 때였다. 유럽의 장묘문화를 취재하는 출장이었다. 프라하의 장례식장을 찾아갔는데, 직원들이 모두 공무원이었다. 시민 중 누군가 사망하면 시청 담당부서에서 장례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했다. 기본적인 비용도 모두 시청이 감당했다. 시청이 왜 장례 업무까지 하는지 잠깐 의문을 가졌지만, 그냥 여기는 그런가 보다 했다.

뒤늦게 깨달았다. 올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무상 급식 논쟁을 보면서 내가 프라하에서 봤던 것이 ‘무상 장례’, 즉 복지대책이었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오스트리아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장례는 모두 지방자치단체의 공적인 업무였다.

“장례식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하면 한국에서 호응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외려 복지병이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일 것이다. 대형병원과 장례전문업체, 상조회사의 반발도 뻔히 예상된다. 가족이 부조를 받아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상식이다.

예전엔 교회에서 상조부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상조부는 교인들의 장례만 맡은 게 아니었다. 유족이 없는 독거노인 같은 이들이 사망하면 지역교회가 장례식을 치러주곤 했다. 동네 청년회나 부녀회가 나서서 장례를 거드는 일도 흔했다.

병원마다 장례식장을 크게 짓기 시작하면서 그런 문화가 퇴색됐다. 교회 상조부의 활동도 줄었고, 한 집안의 장례를 온 동네가 같이 치르는 장면은 더 찾기 어려워졌다. 장례식장이나 상조회사에 더 의존하게 됐다. 장례도 상업화된 것이다.

요즘 장례비는 수천만원을 넘기도 한다. 부의금만 믿고 있기엔 장례비 부담이 너무 크다. 케이블TV를 켜면 상조회사 광고가 넘쳐난다. 가난한 노인의 죽음을 유족들마저 외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장례에서도 빈부격차가 극심하게 드러난다. 인간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는 일마저 돈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한국은 관혼상제를 예절의 기본으로 여기는 나라다. 그중에서도 상(喪) 즉 장례는 3년상이란 게 있었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다. 기독교에서도 장례는 중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고 신의 심판대 위에 올라서야 하는 존재라는 점을 가장 실감하는 순간이 장례식 때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노인 인구는 크게 늘고 있다. 장례식을 계속 시장(市場)에만 맡겨두어도 좋을까. 장례 대책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정치인이 있다면, 적어도 노인들은 한 표를 주고 싶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