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흑룡띠해, 여러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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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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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이라고는 하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게 사람들의 심리다. 과학적 근거도 없는 ‘말’에 불과한 속설들이지만, 좋지 않은 건 피하고 싶고 좋다는 건 챙기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내년은 4년 만에 윤달이 오는 해다. 더구나 60년 만에 돌아온다는 ‘흑룡띠해’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관련 업계에서는 ‘특수’를 잡기 위한 마케팅에 분주하다. 결혼, 출산, 장례와 관련한 각종 속설들이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파고든 때문이다. 대체 윤달이 뭐고 흑룡띠가 뭐기에 사람들이 해도 바뀌기 전부터 벌써 들썩이는 걸까?

◆윤달이 뭐기에?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에는 양력과 음력이 있다. 그런데 달을 기준으로 하는 태음력(太陰曆)은 1년이 354일에 불과해 계절과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이를 조절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윤달이다. 태음력 8년에 윤달을 세 개 보태면 태양력과 얼추 맞아들어가 차이를 줄일 수 있는 것. 윤달이 드는 빈도는 5월이 가장 많고, 11`12`1월은 거의 없다. 특히 11월에는 윤달이 거의 안 들기 때문에 하기 싫은 일, 예를 들어 빚 갚는 일 등을 “윤동짓달 초하룻날 하겠다”고 하면 결국은 갚을 생각이 없다는 말로 해석된다.

몇 년 만에 한 번씩 드는 윤달은 예로부터 여벌달, 공달, 썩은달 또는 덤달이라고도 불렸다. 이 기간에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 혹은 해야 할 일들이 속설로 전해 내려온다. 보통과는 달리 걸릴 것이 없는 달이고, 탈도 없는 달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는 원래 윤달은 ‘없는 달’로 귀신도 모르는 달, 귀신들이 쉬는 기간이기 때문에 부정 타는 일을 해도 액운을 피할 수 있다는 속설에서 비롯됐다.

보통달에 이사나 집수리를 할 경우 길일을 택해야 하지만 윤달에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 나이 많은 노인이 있는 집에서는 윤달에 수의를 만들었다. 산소를 손질하거나 이장하는 일도 흔히 윤달에 한다.

윤달에 피하는 것도 있다. 바로 결혼과 출산이다. 이에 대해 하국근 명리연구원 희실재 원장은 “원래 예로부터 윤달은 손 없는 달이라 해서 오히려 결혼을 많이 했다. 동국세시기 등 고서를 찾아봐도 ‘풍속에 결혼하기 좋고’라는 문장을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전래되는 동안 수의를 만들고 산소를 이장하는 등 좋지 않은 일을 자주 하는 달로 인식되면서 결혼이나 출산 등의 기쁜 일은 피하자는 쪽으로 와전된 풍습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것.

또 하 원장은 “다른 해석도 있다”며 “길신이고 흉신이고 모든 귀신들이 하늘로 올라가 쉬는 달이다 보니 축복받을 일도 없다는 의미로 해석돼 결혼이나 출산 등 축하받고 싶은 일을 피하는 형태로 전래돼 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내년 봄엔 결혼 안해!

결혼시장은 이미 윤달신드롬으로 들썩이고 있다. 내년 봄 결혼식을 생각했던 직장인 조모(32) 씨는 길일을 받으러 역술인을 찾아갔다 급작스럽게 올 1월로 결혼을 당기느라 분주하다. 조 씨는 “음력 2월은 바람달이라고 해서 결혼을 피하고 윤달 역시 피해야하다 보니 봄에 결혼을 할 수 있는 날이 없다”며 “좋지 않은 건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에 조금 바쁘더라도 1월로 결혼을 당겨 하기로 했는데 예식장마다 예약이 꽉 차 식장을 잡는 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양력으로 따져서 내년 3월 중순까지, 또 4월 하순부터 5월 중순까지가 바람달과 윤달이다. 이 때문에 예식업계에서는 예약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올 연말부터 내년 1, 2월까지는 예약이 꽉 찼고 ‘5월의 신부’라고 불리는 결혼식 성수기인 봄철에는 스케줄 표가 텅텅 빌 정도로 극심한 편중 현상을 빚고 있는 것.

더구나 내년에는 60년 만에 돌아온다는 ‘흑룡띠해’로 좋은 기운을 받아 출산하려는 예비 신혼부부들이 늘면서 추운 겨울 때아닌 예식 특수가 빚어지고 있다. 2007년 정해년 ‘황금돼지해’와 2010년 경인년 ‘백호랑이해’에 일었던 결혼 및 출산 붐이 다시 한번 재연되고 있는 것. 용은 용기와 비상, 희망을 상징하는 동물로 특히 ‘검은색’(黑)이 ‘임금’을 뜻하고 있어 신적인 존재인 용에 임금이라는 의미까지 더해지니 아이를 낳으면 좋다는 속설이다. 천간 10개와 지지 12개를 합쳐 한 해가 계산되는데 각 천간 빨강(丙,丁), 파랑(甲, 乙), 노랑(戊, 己), 하양(庚, 辛), 검정(壬, 癸) 등 각자의 색상을 가지고 있다 보니 백호, 흑룡, 황금돼지해 등의 조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노보텔 이유진 예식담당은 “겨울철 예식이 몰리다 보니 지난해 겨울에는 한두 달 전에만 해도 원하는 시간에 예약을 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오전 11시, 오후 4시처럼 보통 기피하는 시간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예식 붐 탓에 예식장을 구하지 못한 일부 예비 신혼부부들은 아예 예식을 6월 이후로 늦추고 있다. 예식업계는 내년 봄철에는 어쩔 수 없는 ‘불황’을 맞이해야 할 형편이다. 김진원(29 )씨는 “내년 봄에 결혼을 생각했었는데 예식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란 친구의 말에 아예 예식을 가을로 늦추기로 양가 부모님들과 의견을 나눴다”며 “미신을 믿는 건 아니지만 찝찝한 일은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보니 결혼을 미루게 됐다”고 했다.

◆장례`이삿짐 업체는 윤달 특수

장례`수의업체나 이삿짐 운송업체, 집수리업체들은 내년 윤달 특수를 잔뜩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이장의 경우에는 몇 년을 미뤘다가 윤달에 할 정도로 ‘손 없는 날’을 따지는 풍습이 있다 보니 벌써 문의전화가 급증할 정도. 한 납골당 관계자는 “윤달이 되면 이장이 2배 이상 증가한다”며 “요즘은 가족 묘를 정리해 납골당으로 옮기는 집안이 많아 일찍부터 문의전화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수의업체들도 잔뜩 기대를 내비치고 있다. ‘윤달에 수의를 구입하면 장수한다’는 속설 때문에 수의가 효도선물로 각광받기 때문이다. 수의판매점들이 줄줄이 늘어선 서문시장에서 판매되는 수의 가격은 제일 저렴한 것이 80만원에서 120만원 선, 안동포는 450만원가량. 수의는 평균 17~19종류로 구성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 편이다. 그나마 800만~1천만원 선에 육박하는 병원 장례식장에 비해서는 시장이 한결 저렴하다. 서문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주인은 “수의는 한달에 한두벌 정도만 판매되는데 윤달이 되면 대여섯 벌 정도로 판매가 늘어난다”며 “자녀들이 효도 선물로 구입하는 경우도 있고, 어른이 직접 자신의 수의를 구입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했다. 심지어 일부 부유층에서는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황금수의를 장만하기도 한다.

장례업체뿐만 아니라, 이삿짐 운송업체와 집수리업체들도 모처럼 일거리가 증가할 것에 대비해 각종 할인행사 등 마케팅 준비에 분주하다. 못 하나를 박아도 조심스러운 우리나라의 풍속상 집수리와 같은 일은 액운이 없는 윤달에 하는 것이 좋다는 풍속 때문이다.

첨단 과학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현대사회지만 아직도 윤달에 관련된 속설들은 우리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신은 미신일 뿐이지만, 그래도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일들은 언제나 조심스럽고,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