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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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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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jpg일 년에 두 번, 묘지 나들이를 간다. 봄ㆍ가을에, 그것도 평일도 아닌 주말에 대전 현충원까지 가야 한다는 사실은 한숨부터 나오는, 그야말로 나들이 아닌 나들이다. 그럼에도 몇 년째 거르지 못하는 이유는 7년째 혼자 사시는 엄마 때문이다. 엄마에게 그날은 당신 생일이나 집안 제사보다 중요한 날이다. 평일이나 철을 피해 가는 건 어떠냐고 넌지시 불만을 표시해 보기도 했지만 엄마는 요지부동이다.

막상 그곳에 가도 할 일은 없다. 일 년 내내 국가가 관리하는 곳이고 보니 벌초를 할 일도, 뗏장을 입힐 일도 없다. 각자 빈약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다가 엄마가 밤새 준비한 밥을 먹고 서둘러 돌아오는 일이 우리 형제들이 하는 일의 전부다.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해도 될 일인데 찰밥과 새로 담근 김치며 불고기, 나물, 전까지 챙기는 그 수고로움도 애써 챙기지 않는다. 엄마가 가족을 모을 구실로 그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과 아직 그 정도의 능력이 자신에게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늙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이 늘어나고 보행신호가 바뀌기 전에 보도를 횡단하는 일조차 힘겨워지는 순간이 온다. 그런 날이 오면 안부 인사는커녕 전화조차 없는 자식들에게 공연히 노여웠다가 서러워지길 반복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희미해진 자신의 위치를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할 것이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지고 평균 수명은 점점 높아지는 시대다. 소수의 젊음이 다수의 늙음을 책임져야 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각종 정책들이 제시되지만 현재로선 별로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노인들은 점점 고독해지고 젊은 세대는 그 고독을 돌볼 여력이 없는 것 또한 답답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같이 이마를 맞대고 밥 한끼 먹는 일은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잠시나마 노년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면 못할 일도 아니다. 그것이 내가 군말 없이 엄마를 따라나서는 이유다. 죽은 자는 산 자들을 불러 모으고 늙은 자는 젊은 자를 이끈다. 그래서 나는 올해도 묘지로 나들이를 간다. 순환과 순리가 시작되는 조용한 그곳으로.

[김선재 시인ㆍ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