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가족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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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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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한 분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장 입구에, “가족들의 요청대로 조의금을 받지 않습니다”라는 사인이 붙어 있었다. 바쁜 세상에, 장례식에 참석해서 나의 죽음을 조문해 주고 애도해 주는 것만도 감사한테 거기에다 조의금까지 받는다는 것은 조객들에게 너무 많은 피해를 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가난한 집안의 경우 조객들이 조의금을 냄으로 해서 어려운 장례를 도와주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조문을 와주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고 조의금은 사양하는 것이 예의일 것 같다.내가 아는 사람은 조그만 가게 하나를 가지고 살고 있는데, 결혼식이며 돌잔치, 그리고 장례식에 참석할 때마다 돈이 없어 고생을 하고 있다고 했다. 와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얼마 전에 내가 좋아했던 유대인 회장(CEO)이 죽었는데, 죽은 이의 가족들만 모여서 가족장례를 치른다고 했다. 조의 카드만 보내 나의 애도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장례는 유대인들 외에 흑인이나 백인들도 가끔 치른다.

생각해 보니 가족장례가 꽤 좋을 것 같다. 내가 죽은 후, 아내와 나의 자식들은 내 친구들에게 장례에 참석해 달라고 일일이 전화를 걸어야 할 것이다. 바쁘게 사는 친구들에게 나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조문해 달라고 부탁하면, 어떤 사람은 기꺼이 장례식에 참석해 줄 것이고, 어떤 친구들은 귀찮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장례를 준비하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나는 가족에게 가족들만 모여서 조용하게 장례를 치러 달라고 당부했다. 가족들에게 가족장례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병원에서건 혹은 집에서건 내가 죽거든, 장의사를 거치지 말고, 나의 시신을 직접 화장터로 옮겨 화장한다. 화장하는 데는 대략 500달러가 소요된다.

일가친척 모든 가족이 집에 다 모이면, 함께 내 영정에 큰절을 두 번 한 다음, 모두 앉아서, ‘반야경’(3분 정도)과 ‘금강경’(30분 정도)을 독송한다. 함께 장송가를 불러도 좋다. 그런 후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나의 좋은 점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하며 애도하는 것이다. 만약 아내가 나보다 먼저 죽는다면 나는 이처럼 가족장례를 치러줄 예정이다.

아내하고 자식들에게 매년 나의 제삿날에 음식을 차려놓을 필요는 없지만, 나의 영정 앞에서 꼭 ‘금강경’을 독송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영혼을 위한 것이 아니고, ‘금강경’ 안에 내가 가족에게 하고자 하는 말들이 모두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2~3개월 전에 나의 아는 사람이 작고했다. 알아본 즉 그 사람의 가족은 장례비용으로 1만4,000달러, 비석 값으로 3,000달러, 그리고 찾아온 조객들을 식당에 모신 식사비용 등 이것저것 다 합쳐서 2만달러가 들었다고 했다. 많은 돈이 들었다. 내가 죽거든 가족장례를 치름으로 해서 2만달러를 아껴, 그 돈을 손자와 손녀의 교육비나 혹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자선단체에 기증해 달라고 부탁했다.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