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군 지도자 유골 15년째 안장 미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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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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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일본에서 국내로 돌아온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골이 안장 장소를 마련하지 못한 탓에 아직도 박물관 수장고에 방치되고 있다.

이 유골은 1995년 7월 일본 홋카이도대학의 한 창고에서 ‘한국 동학당 수괴’라는 글씨와 함께 발견됐다. 여기에는 유골이 1906년 전남 진도에서 수습되었음을 기록한 쪽지도 같이 있었다. 이듬해인 96년 유해봉환위원회가 구성되고 그해 5월 유골이 국내로 옮겨져 전주역사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당시 국내 봉환작업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2006년 유골을 진도로 모시기 위해 묘지 터와 기념관 설계도까지 갖춘 용역보고서가 나왔으나, 진도군수가 바뀌고 시대 상황이 변하는 등 여러 요인에 따라 결국 계획이 좌초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봉환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조선대 등이 참여해 디엔에이(DNA)를 조사한 결과, 40대 남성으로 나와 동학농민혁명 당시 진도의 지도자였던 박중진으로 추정했다”고 설명했다.

신순철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원광대 교수)는 “진도군 쪽에서 ‘이 지역 출신이라는 명백한 근거가 없다’며 유골을 모시지 않겠다고 밝혀 박물관에 계속 보관하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조광환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은 “지난달 열린 국제학술포럼에서 한 일본 학자가 유골이 안장된 곳을 찾았으나, 안내하지 못해 부끄러웠다”며 “국내 봉환을 이끌었던 단체가 추진위를 꾸려 마무리까지 맡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장소를 못찾고 예산이 부족한 탓에 안치가 미뤄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한숨지었다.

학계에서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있는 전북 정읍시 덕천면 황토현전적지를 유력한 후보지로 꼽고 있다. 현재 황토현전적지 안에 있는 사당 구민사에는 동학농민군 150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유골을 국내로 봉환했던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무명 농민군 지도자의 안치와 추모를 위해 2002년 고인의 흉상(실제 인물의 1.5배 크기)을 제작했다. 유골과 흉상은 각각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와 전시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