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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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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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묘의 주인은 누구일까.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일 것이다.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리산(驪山) 남쪽에 위치한 진시황릉은 이집트 고왕국 쿠푸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기자의 대피라미드도 상대할 수 없는 규모를 자랑한다. 전체 면적 56.25㎢로, 자금성 78개에 해당하는 넓이다. <사기> 진시황본기에 따르면 천상과 지상을 모방한 지하 궁전 내부에 수은으로 된 시내가 흐르고 도굴꾼이 들어가면 입구에서 화살이 쏟아지는 장치도 설치돼 있다. 현재 일부만 발굴된 모습에도 입이 벌어지는데, 완전히 발굴하려면 100년이 더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에서 진시황릉보다 더 큰 묘는 덩샤오핑(鄧小平)의 묘가 아닌가 싶다. 중국·홍콩·대만 사이의 남중국해가 그의 무덤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완전한 통일을 원한 그는 무덤을 만들지 말고 화장해서 유골을 남중국해에 뿌려달라고 유언했다. 실제로 그의 각막과 장기의 일부는 이식 및 의학 연구용으로 기증됐고 유해도 화장한 뒤 바다에 뿌려졌다. 무력으로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와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을 G2 국가의 길로 이끈 덩샤오핑. 둘 다 중국을 크게 변화시킨 점에서 ‘영웅’이라 불리지만 무덤은 완전히 다른 곳에 다른 모습으로 있다. 하나는 시안에, 다른 하나는 중국인의 마음속에….

죽은 뒤 묻힐 곳을 마련하는 것은 필부필부에게도 중대사다. 사자와 유가족, 또 그들이 속한 집단의 종교·전통·문화·가치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자의 뜻대로 장례가 이뤄지지 않는 예도 흔하다. 어머니 묘 옆에 묻어달라고 한 소련의 레닌, 조국 산하에 유골을 뿌려달라고 한 중국 마오쩌둥(毛澤東)과 베트남 호찌민(胡志明) 등의 시신이 냉동 또는 방부 처리돼 붉은광장, 톈안먼, 하노이 영묘 등에 안치된 것이 그런 경우다. 반면 프랑스의 영웅 드골은 유언을 따라 국립묘지가 아니라 고향 콜롱베 공동묘지의 딸 곁에 묻혔다.

지난 25일 세상을 뜬 ‘베트남전의 영웅’ 채명신 장군이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묘역이 아니라 사병 묘역에 안장된다. 생전에 파월 장병과 함께 묻히길 희망했던 고인의 뜻을 존중해서다. 장군이 사병 묘역에 묻히기를 희망한 것은 현충원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장군 묘역의 8분의 1 면적(3.3㎡)에 불과할 것이지만 그의 묘역이 매우 넓고 거대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