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年에 대성 老年에 빈곤·고독한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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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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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신살(神殺)의 방위이론에서 화개(華蓋)는 12운성으로 보면 묘(墓)에 해당하는 방위다. 그러므로 화개(華蓋)는 삼합오행을 이루는 3요소들 중에서 맨 끝의 종지(終支)에 해당한다. 예컨대 인오술(寅午戌)의 술(戌), 해묘미(亥卯未)의 미(未), 신자진(申子辰)의 진(辰), 사유축(巳酉丑)의 축(丑)이 각각의 삼합오행에서 12운성으로 묘(墓)이자 화개(華蓋)살에 해당한다. 

화개(華蓋)살은 품격은 민위(民位)에 속하고 방문객에 해당하지만 자문관에 해당한다. 화개(華蓋)살의 방향은 풍수이론 상으로 가세가 기울어져 이사를 가거나 또는 다급한 사정으로 인하여 이사를 가는 방향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자문관이란? 군왕이나 대통령의 곁에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있으면서 획기적인 국정수행부분에 대해 합리적인 묘책과 대안을 제시해 대통령이나 군왕이 매끄럽게 국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라고 보면 바를 것이다.

예컨대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어떤 중요한 정책을 내놓고 1차 시도를 감행했다. 그런데 이 정책이 국민들로부터 거부를 당하게 될 경우 차선책을 제시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자문관이다.

그래서 자문관은 국정수행의 전방에 나서는 일이 절대 없고 뉴스의 서포라이트나 플래시를 받는 일은 더 더욱 없는 처지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제자를 가르치는 석학들이나 전문연구기관의 석학들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정부위원회에 참여하여 대안을 제시해주거나, 가끔 토론회, 청문회 등에 출연해 특정주제에 대하여 열띤 토론에 참여하는 정도다.

아무리 좋은 의견이 제시되었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국정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의견들은 대통령이나 군왕에 의하여 채택될 수도 있고 아니면 기각될 수도 있음이다. 그래서 화개(華蓋)살의 작용은 수정과 반복의 작용으로 보면 바를 것이다.

여기서 반복은 개선을 위한 수정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자문행위는 늘 차선책이거나 군더더기가 될 수밖에 없다. 수정행위는 전적으로 실행해 본 후의 결과에 따라 그 길흉을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경제개발5개 년계획’이나 ‘국토발전10개 년계획’은 이를 수립한 연구진들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진부(眞否)는 5년이 아니면 10년이 지난 후에나 그 평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문관의 자문내용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인간생활에서 반복과 수정행위는 절대로 필요한 것이고 그런 행위가 주어짐으로써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일반생활에서의 반복행위와 수정행위가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를 살펴보자.

예를 들어 냄새가 나는 화장실에 하루에도 몇 번씩 다니는 행위, 지식을 쌓기 위해 일정한 학교를 지겹게 정해진 기간을 다녀야 하는 행위, 부부가 중도에 불편하게 살다가 헤어졌으나 자식이나 다른 이유 때문에 재결합하여 사는 경우 등이 모두 화개(華蓋)살의 작용력에 부합하는 행동들이다.

즉 1차의 행동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제2차 제3차의 반복이나 수정행위로 그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생활습관에서의 반복된 생활이라면 그 상대하는 물건이 신품은 아닐 것이고 중고품이거나 아니면 가공품이다.

그렇기에 기존의 행동에 분명히 시행착오가 있었음이 분명할 것이고 1차의 행위에서 착오가 발생하였다면 제2차 제3차의 행동을 실행하기에 그 이전의 행동이 못 쓰게끔 되었거나 다시 사용하다가 불편했음이 분명했음이니 영구적인 필요를 충당할 수는 더더욱 없음이다.

예컨대 어떤 학생이 법대를 졸업하였으나 사법고시에 합격할 자신이 없어서 일반직공무원이 되었다거나 아니면 전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건설업을 했다면 부전공도 아닌 엉뚱한 일을 하였으니 그 일에 익숙해지기까지에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큰 발전을 이룰 수가 없었을 것이 당연한 이치다.
화개(華蓋)살의 작용력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조상묘지를 화개(華蓋)살의 방향에 모셔둔 후손이라면 어렴풋이나마 이 글에서 전하려는 의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조상묘지를 천살(天殺), 월살(月殺), 반안(攀鞍)살의 방향에 모신 경우 등에 관해서는 이미 이전의 글들에서 밝힌 바가 있다.

화개(華蓋)살의 정(正)방위는 진술축미(辰戌丑未)라는 묘(墓)방위들 중에서 태어난 띠(生年)에 따라 각각 한곳씩에 해당한다. 그러나 화개(華蓋)살의 바로 옆인 측(側)방위의 작용력도 크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1950년부터 1953년 사이의 한국전쟁 당시에 남쪽으로 월남하여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적으로 그는 북쪽에 조상묘소를 그대로 두고 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난 해가 인오술(寅午戌)년생이거나, 사유축(巳酉丑)년생이라고 한다면 화개(華蓋)살의 작용력과 어떤 관계를 가질까를 한번 생각해보자.

인오술(寅午戌)년생이거나, 사유축(巳酉丑)년생의 경우로 정북방에서 가까운 방위로 좌우의 측방을 함께 따져보자. 서북간방인 술(戌)방과 동북간방인 축(丑)방이 각각 화개(華蓋)살의 방향이다.

예컨대 인오술(寅午戌)년생에게는 서북간방인 술(戌)방이 화개(華蓋)살의 방향이고, 사유축(巳酉丑)년생에게는 동북간방인 축(丑)방이 화개(華蓋)살의 방향에 해당함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남쪽으로 월남하여 서울에 살고 있는 인오술(寅午戌)년생과 사유축(巳酉丑)년생은 화개(華蓋)살의 방향쯤에다 조상무덤을 모신 셈이 된다. 이렇게 화개(華蓋)살의 방향에 조상묘지를 둔 후손은 중년의 한때에는 대성하고 대발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일도 있었을 것이고, 한때에는 정치적으로 대성할 수도 있었을 것이나 노후에는 빈곤과 고독을 맛보게 된다는 점이 그 삶의 특징이다.

다시 말해 월남민 중에서 인오술(寅午戌)년생과 사유축(巳酉丑)년생의 경우가 바로 초장 끗발은 좋았으나 끝판의 끗발이 흐지부지하다는 말로 비유를 한다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이렇게 화개(華蓋)살의 방향에 조상묘지를 모신 후손들의 생활은 떠돌이 생활이 오래 동안 지속된다는 뜻이고 말년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의미다.

농부가 힘들여 봄에 씨앗을 뿌리는 행위는 가을의 수확을 맛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생의 말년에 해당하는 가을에 태풍이 불어 흉년이 든다면 참으로 슬픈 인생이라 할 것이다. 사람이 젊어서 부지런히 일을 함은 노후에 편안히 안거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행동인데 그 결과가 쭉정이 빈손이 된다면 속된 말로 어디 살맛이 나겠는가?

천명사주의 원국에 화개(華蓋)살이 있거나 아니면 대운에서 화개(華蓋)살을 갖는 사람은 자기명의로 취득한 부동산으로 인하여 재미를 보는 일이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즉 화개(華蓋)살은 동산은 몰라도 절대로 부동산과는 인연이 약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화개(華蓋)살은 부동산과의 인연이 전혀 없는 것이니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화개(華蓋)살을 가진 사람이 부동산투자를 했을 경우 모두 다 실패하는 것은 아니고 고향부근에 장만한 부동산은 본래의 화개(華蓋)살의 뜻에 부합하는 경우이므로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니 혼동할 필요는 없다.

태어난 해가 해묘미(亥卯未)년생의 경우를 보자. 그는 고향이 전라도인데 지금은 강원도 춘천부근에서 살고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해묘미(亥卯未)년생에게 화개살의 방향은 미(未)방향인 서남간(西南間)방이다.

대체적으로 고향에 조상묘지를 두고 있음이므로 그는 화개(華蓋)살의 방향에 조상묘지를 모신 셈이다. 이럴 경우 현재 주거위치에선 발복되기 어렵다.

그러나 후손들 중에서 태어난 해가 신자진(申子辰)년생이 나타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신자진(申子辰)년생의 후손 입장에서 미토(未土)의 방위는 천살(天殺)의 방향이 되므로 그 후손이 출생하면서부터 사람됨이 총명하고 그가 자람에 따라서 소위 조상님의 음덕을 기운 상으로 받고 입게 되어 출세는 물론이고 그 가문에서 가장 걸출한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는 이치다.

결론적으로 명당의 개념도 후손들의 태어난 띠(生年)에 따라서 수정되는 셈이 된다. 이러함의 이유는 강원도에서 살고 있고 전라남도 지방에 조상묘소를 거느린 후손 중에서도 다른 후손들에겐 발복(發福)과 무관하고, 단지 신자진(申子辰)년생의 후손들에게만 명당인 곳에 조상을 모신 셈이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조상묘소가 천살(天殺)의 방향으로 설정된 후손들은 발복(發福)과 개운(開運)이 진행이 된다. 그러나 조상묘소가 화개(華蓋)의 방향으로 설정된 후손들은 발복(發福)과 개운(開運)이 진행되지 않아 조상의 원력(願力)을 입을 수가 없다는 이치다.

조상의 원력(願力)이란? 운명의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과도 같은 것이기에 운명의 사이클이 척척 잘 통하는 것이다.

천살(天殺)의 방향에 조상묘지를 모신 후손은 자신의 노력과 조상의 원력을 플러스한 행운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나머지 후손들은 자신의 노력만큼의 행운만 소유했을 뿐 조상님의 원력이 미치는 가호는 전혀 받지를 못하는 생활만을 하게 되므로 발전이 없거나 가세가 기울어 빈곤하게 살게 된다는 이치다.

조상의 음덕(蔭德)과 가호(加護)를 받지 못하는 삶은 망망대해에서 선장이 없이 표류하는 조각배나 다름이 없다. 그러함의 이치가 바로 자연의 섭리이고 자연의 물리이니 주거지인 주택의 입지가 얼마나 중요한 관건인지 다시 한 번 성찰을 해볼 필요가 있음이다.

따라서 조상이 없이 태어나 사람은 천지에 그 어느 누구도 없는 법이다. 그러 할진데 조상의 고마움을 기리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무슨 개운(開運)이 있을 것이고 발복(發福)이 따라 오겠는가?
 
노병한 한국미래예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