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유교와 장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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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4-15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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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래 경희대학교 교수
경기도가 유럽에만 있는 아름다운 정원형태의 자연장(自然葬)을 선보인다고 한다. 자연장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적극 환영하는 바이다.

언제부터인가 삶의 여유가 생기면서 조상을 위하여 묘소에 석물을 세우고 재 단장하는데 붐을 이루어 왔다. 최근에는 가족공동묘원 조성과 납골묘를 하기 위하여 각 문중마다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매장문화는 조선시대 초기 유교문화가 정착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고려시대에는 국왕이나 특별한 지위에 있는 사람 이외는 매장을 하지 않아 현재 고려시대부터 전해지는 묘소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유교가 국교로 된 조선시대 이후는 매장을 하여 조상의 묘소를 잘 관리하는 것이 가문을 지키는 것이요, 신분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조상의 묘소를 잘 모셔오는 풍습이 이어져왔다.

그로인하여 우리나라의 국토 중 양지바르고 토양이 괜찮은 산은 대부분 묘소가 산재해 있는 실정이다.

옛날에는 특별한 신분의 묘소 이외는 흙으로 된 봉분과 잔디로만 되어있었으나, 최근에는 묘소 주변의 조경, 웅장한 돌과 비석을 세우는 것이 마치 조상을 잘 모시고 부의 상징인 것처럼 생각하여 각 문중마다 자연환경의 훼손과 유지관리에 시간과 비용이 과다하게 지출되는 실정이다.

우리말에 사람이 죽으면 "그 분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이는 태어나서 인간 세상에 살다가 자연으로 되돌아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자연의 상태로 환원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유교의 본산인 공자의 묘소와 유적이 있는 중국 산동성 곡부시에 가보면 공자의 제례를 모시는 사당인 공묘(孔廟)가 있고, 공자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면서 행정을 관장하던 공부(孔府)가 있으며, 공자를 비롯해서 제자와 후손의 묘를 쓴 공림(孔林)이 있다.

필자는 몇년 전 태산과 공자의 묘소를 방문해서 참배를 한 적이 있다. 일행들과 함께 참배를 하면서 놀란 것은 공자의 묘소 즉 봉분이 자연 그대로 방치되어 있으며 심지어 수백 년 된 나무가 봉분위에서 자라고 있는데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다는 점이다.

공자 묘소 옆에 후손들이 공부(孔府)에 살고 있으며, 공림은 국가가 관리하는 국립공원이며, 공자는 세계 4대 성인이 아니던가?

요녕성 심양에 있는 청나라 황제인 청태종의 묘소를 관람했을 때도 황제의 묘소인 봉분 정상에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북경에 있는 명나라 황제들의 묘소인 명13능에도 묘소를 알 수 있는 별도의 봉분이 없었고, 중국을 최초로 천하 통일한 진시황제의 묘소도 외부에서 찾을 수가 없도록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되어있어 현지에 가면 "이 부근이 진시황제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라고 안내원이 산을 가리치며 설명을 한다.

최근에는 중국의 최고 지도자인 덩샤오핑(鄧小平)도 사망하면서 화장(火葬)을 유언으로 하여 묘소도 없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묘소 치장문화는 언제 어디서 온 것일까?
혹시 후손들이 자기네 신분과 외부 과시용으로 변절된 것은 아닐지?
필자도 조선시대의 이름난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한 해에 두 차례씩 즉 벌초와 시제(時祭)때 마다 바쁜 중에도 16대에 걸친 조상의 묘소를 모시는데 시간과 노력을 해오고 있는 중이다.

필자는 십 수 년 동안 아무리 바빠도 벌초와 시제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왔다.
이것을 숙명으로만 생각해야 하는가?

인간이 사망하면 가장 자연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

작은 국토와 세계에서 가장 밀집한 인구 밀도를 가진 대한민국에서 유교의 본산인 중국에서 조차 없는 장례와 묘소문화를 한번쯤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최근에 자연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후손에게 물려 줄 아름다운 우리강산에 납골묘를 한다고 하여, 혹시 산속의 묘소를 아파트처럼 돌과 시멘트로 치장하여 자연을 훼손하며 흉물을 만들어 놓고 있지나 않은지?

국가와 후손을 위해서라도 장례문화는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