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죽음의 이중적 공간 詩語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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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4-1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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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은 이도 저도 아니다. 뭍도 아니고 물도 아니다.

'늪'은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하다. 자연 생태의 보고라는 의미에서 생명의 공간이기도 하고,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날 수 없는 죽음의 공간이기도 하다. 김승강 시인의 말처럼 그 늪과 이 늪이 겹치고, 이 늪과 저 늪이 겹친다.

부산·경남의 시인들로 구성된 '문청(文靑)'동인이 그 늪에 빠졌다. 이번에 내놓은 동인지 '문청동인 9집'의 제목은 아예 '늪'이다. 10명의 시인이 '늪'을 화두삼아 다양한 시적 상상을 풀어냈다.

성선경 시인은 "사라져가는 그리운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자는 의미에서 늪을 화두로 삼았다"고 했다. "생각보다는 다양한 화소가 나오진 않은 것 같다"고 겸연쩍어했다. 그래도 이형권 평론가의 지적처럼 문청동인들은 늪에 대한 관성적 인식, 다시말해 생태적 건강성을 지닌 찬탄의 대상이거나 생태 오염을 비판하기 위한 담론의 소재란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그걸 뛰어넘는다.

'묘지 입구에 앉아/ 무덤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어 보라./ 새벽에 떠 놓은 찬 물 같은/ 막사발 마음에 생이가래가/ 잔뜩 낀 얼굴들이 올라오면/ 주검의 늪조차/ 공원으로 슬쩍 몸 바꾸는 것을'.(성윤석 '늪' 전문) 묘지와 무덤의 이미지로 형상회된 죽음의 공간인 늪이 삶의 공간으로 바뀌는 찰나를 놓치지 않은 거다.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함과 아이러니로 늪을 보기도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주 깜박 수렁에 빠지고/ 잊어야 할 것은 부레옥잠처럼 둥둥 떠올라'(성선경 '우물쭈물하는 사이' 중에서)처럼 늪은 삶을 살아내는 이들에겐 종종 '기억의 절름발이'와도 같은 것이다.

사랑에 빠진 이에게 늪은 수렁이지만 사람들은 그걸 알고도 계속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늪, 하며 몸을 쭉 뻗어 보지만/ 길은 보이지 않는다'(정익진 '사랑' 중에서) 거나 '차가운 화상자국 같은 옛사랑이/ 태곳적 침묵보다 무겁게 웅크리고 있는/ 그리웁고 무서운/ 무섭도록 그리운'(김선혜 '늪, 무섭고 그리운' 중에서) 공간이 되는 거다.

그리하여 차 있으면서도 여전히 허기를 느끼는 늪을 이런 시선으로 보듬는 거다. '이별이 싫어서 덥석/ 걸음을 낚아채는 것이리라/ 단번에 온몸을 받아 껴안고/ 생각까지 빨아들이는 것이리라'(최석균 '늪의 사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