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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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11-06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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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래의 아시아 불교민속

고인과 이별하는 태국인들의 자세는 특별나다. 엄숙한 마음가짐으로 태국장례식에 참석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험담에 ‘당황스러웠다’는 표현이 많다.
 
빈소에서 노래와 춤이 펼쳐지는가하면, 고인의 관과 영정 앞에서 밝은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도심에서 치르는 장례식은 엄숙하게 바뀌었지만 태국인들이 고인을 떠나보내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밝고 축제적이다.
 
그들에게 장례란 비통한 이별의식만이 아니라 환송회의 성격을 지닌다. 누군가 먼 길을 떠날 때면 지인들이 모여 이별의식을 열어주게 마련이고, 이때 의식이 성대할수록 주인공은 흐뭇한 마음으로 떠날 것이다.
 
또한 이승의 죽음은 저승의 탄생이기에 축복의 몸짓이 빠질 수 없고, 산 자들이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떠들썩함도 필요하다. 태국인들이 고인과 이별하는 방식에는 이렇듯 윤회를 전제하는 내세관과 산 자를 위한 장치들이 담겨 있다.
 
축제적 장례가 우리에게도 낯선 것은 아니다. 전통장례에서 발인 전날이면 상두꾼들이 ‘빈 상여놀이’로 축제적 난장을 펼쳤고, 고구려 때부터 상여행렬에 따랐던 춤과 노래는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유학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우리네 민간의 장례풍습이었다. 따라서 태국인들은 인간보편의 심성이 담긴 축제적 이별을 지금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태국의 장례식은 주로 사원에서 이루어지고 집에서 치를 때도 스님을 모시는 일이 당연시된다. 대개 네 분의 스님이 빈소에 참석하여 고인을 위해 염불하고 산 자들에게도 생사의 무상함을 일깨운다.
 
입관 전 빈소에서는 고인과 조문객 간에 중요한 의식이 펼쳐지는데, 흰 천으로 덮은 고인의 한 쪽 손을 밖으로 내밀게 한 다음 그 손에 법수(法水)를 붓는 것이다. 이때 저마다 ‘고인과 우리가 지은 죄업을 모두 씻어주십시오’라고 염송하니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의 업을 정화하는 관욕(灌浴) 의식이라 하겠다.
 
장례기간 동안 고인이 편히 머물 수 있도록 작은 집을 지어 침구에서부터 주방용품에 이르기까지 마련해두는 정성을 쏟기도 한다. 발인을 할 때면 고인의 관이나 상여를 묶은 끈을 길게 이어 장례행렬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잡고 화장장으로 향한다.
 
화장을 하기 전에 조문객들은 작은 지화(紙花)를 제단에 바쳐 고인의 저승길을 축복하고, 이들 꽃은 관에 넣어 함께 태운다. 화장은 5일장이나 7일장을 마치고 행하는 ‘생화장’과, 백일 또는 몇 년 간 주검을 보관해두었다가 행하는 ‘건화장’으로 구분된다.
 
고인을 위한 환송회를 열어 같이 관욕을 하고, 죽은 자와 산 자를 긴 끈으로 연결한 장례행렬에 동참해 지화를 바침으로써 그들은 마지막까지 고인과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함께하였다. 떠나보내는 이들의 얼굴이 밝았듯이 고인의 저승길 또한 밝고 행복했을 법하다.
 
그런가하면 태국의 풍습 가운데 관속에 들어가 하룻밤 죽음을 경험하는 ‘카핀의식’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죽음의 신을 속여 병이나 업보가 없어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근래에는 시간이 짧아졌겠지만 관속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참으로 예사롭지 않은 죽음체험이어서, 마치 죽었다가 살아난 것처럼 새로운 다짐으로 살아가는 전환점이 되었을 법하다. 죽은 자와 이별하고 죽음을 체험하는 그들의 풍습에서 적극적인 삶의 지혜를 엿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