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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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7-0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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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래의 아시아 불교민속 

어느 일본인이 말하기를, 어렸을 적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집에 모신 신도(神道)의 신단을 천으로 가렸다고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 잘 모르는 채 ‘신도의 신들은 죽음을 싫어하나보다’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어른으로 성장해가면서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고 느꼈으리라. 신들의 생각을 알 순 없지만, 적어도 일본인들이 보는 신도의 신들은 죽음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신도로 태어나 불교로 죽는다’는 말이 있듯 일본인들에게 신도와 불교는 삶과 죽음으로 뚜렷이 구분되어 있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신단 앞에서 손뼉을 치며 배례하고, 저녁이 되면 불단 앞에서 합장하며 배례한다. 새해가 되면 신사참배를 하고, 오봉에는 조상공양을 하러 절로 향한다. 일생의 주기 속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반복된다.
 
삶의 중요한 마디마다 치르는 행사와 현세의 안녕을 빌 때는 신사를 찾다가, 죽음의 문제에 직면해서부터는 그 의지처가 절로 넘어간다. 장례에서부터 탈상과 제사에 이르기까지 망자를 위한 의례는 불교의 테두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루의 아침과 저녁, 일 년의 시작과 중순, 일생의 삶과 죽음, 그리고 집안의 신단과 불단, 마을의 신사와 사찰…. 일본인들의 시공간 속에 나란히 공존하는 신도와 불교는 마치 음양의 이치처럼 조화롭다.
 
죽음을 보살펴온 그들의 불교문화를 좀 더 들여다보자. 임종을 하면, 머리를 북쪽으로 두어(北枕) 부처님의 죽음을 따르게 하고 스님을 모셔 고인의 머리맡에서 불법을 들려준다(枕經).
 
장례식장에서도 빈소의 맨 앞에는 스님의 자리가 마련돼 있어 이곳에서 독경은 계속된다. 입관을 하기 전에 스님으로부터 계명(戒名)을 받는데 이 계명을 위패에 적고, 사십구재나 이후의 의식에 호명되면서 사후출가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징표로 삼는다.
 
전통 염을 할 때면 승려의 순례복장으로 수의를 갖춘다. 흰 두루마기에 흰 버선과 짚신을 신기고 손에는 흰 장갑을 끼워 지팡이를 들려준다. 팔에는 염주를 걸고, 바랑에는 동전ㆍ쌀ㆍ가위ㆍ바늘 등과 고인이 좋아했던 물건을 넣어 먼 길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화장한 유골은 절의 묘지에 안치되고 지속적으로 절의 관리를 받는다.
 
임종에서부터 후손공양을 받기까지 일본의 영가는 삼보의 보살핌 속에서 불법을 향유하니, 극락왕생의 길도 그만큼 가까우리라 여겨진다. 그들의 불교문화를 보면 사람이 죽어 부처인 호토케(佛)가 된다는 관념이 생겨난 것도 당연한 듯하다. 부처님을 모신 불단이 조상신을 모시는 곳으로 통합되어 있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그런데 근래에 일본불교가 대중적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게 된다. 그 뒤엔 어김없이 ‘장례불교’의 폐해가 언급된다. 불자로서 수미일관 삼보의 품안에서 사후를 보내는 것은 축복이지, 문제가 될 리 없다.
 
문제는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에 달려 있다. 사후 계명료(戒名料)에 수백만 원이 매겨져 있고, 계명에도 등급이 있어 부유한 신도들은 천만 원이 넘는 높은 급의 계명을 산다고 한다.
 
부처님은 의도의 중요성을 설파하면서, ‘의도(思)가 곧 업’이라 말씀하셨다. 생활불교가 바람직하게 정착된 일본불교에서 이제 다시 방향성을 성찰할 때이다. 역사적으로 누적된 문제가 언젠가 개혁되어야 한다면 지금이 그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