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귀족의 장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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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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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신라 귀족의 장묘문화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국립경주박물관이 7세기 신라 귀족무덤인 경주시 용강동 6호 돌방무덤의 각종 부장품을 전시, 공개한다.

1991년에 발굴된 6호 돌방무덤은 경주시 용강동 금강산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봉분 지름 14m로 봉분의 둘레를 따라 둘레돌이 돌려져 있으며 봉분 중앙에 남서쪽으로 문을 낸 돌방이 있다. 돌방 안에는 벽돌을 깔아 만든 관대가 있다.

관대에는 금동으로 감싼 관못과 금동대구(허리띠 연결 걸쇠) 등이 발견됐고, 관대 바깥에는 40여 점의 토기류와 지석(주인공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돌)이 놓여져 있었다. 특히 이곳에는 관대와 지석 등 신라의 전통 장송의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중국 문물이 다수 포함됐다. 특히 지석은 신라 무덤에서는 처음으로 출토된 것이다. 국내에서는 무녕왕릉 지석 이후로 두 번째다. 또한 녹갈색 시유두귀항아리와 비파형 금동대구 등 중국 계통의 부장품도 출토됐다. 바둑돌로 추정되는 자갈돌도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 나온 바둑돌은 신라의 바둑 도입 시점이 사서의 기록보다 1세기 이상 앞선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한편 7세기 이후 신라의 왕과 귀족 무덤은 부장품이 화려하지 않다는 이유로 마립간기인 5세기의 대형 무덤(적석목곽묘)에 비해 널리 소개되지 않았다. 6세기 중엽 이후 신라는 중앙집권화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왕은 불교를 공인하고 새로운 장법인 돌방무덤(石室墓)을 도입했다. 이때부터 장례는 간소화되고 부장품의 양이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영훈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용강동 6호 무덤은 7세기 초에 사망한 신라 귀족의 무덤으로, 무덤의 구조와 부장품이 당시 문화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