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장례치른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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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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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서로 만나 결혼하여 해로하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렇지만 사고나 질병으로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은데, 일부종사는 옛말이고 재혼하는 경우가 많다.

마누라가 일찍 죽으면 남편 되는 자는 장례 끝난 후 화장실에 가서 씩 웃는단 말이 있다. 거시기를 만지작 거리면서 “넌 이제 좋겠다. 새 집으로 이사 가서…” 라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남편이 일찍 죽으면 아내는 어떨까? “저이와 함께 묻어줘…” 라면서 대성통곡을 하다가 장례를 끝낸 후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앉아 자기 몸매를 감상한 다음에는 ‘아직도 쓸만한데?’ 라는 생각이 든단다.

거시기를 만지작거리면서 “전세 놓을까, 월세 놓을까? 이왕이면 아예 일수로 돌려 버려?” 온갖 생각을 다 한다고 한다. 우스개소리이긴 하지만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주 소득원인 가장의 사망에 따른 가정경제의 파탄을 방지하여 남은 가족의 평화로운 삶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보험은 필요하다.

이혼이 흔한 미국 등 서구 사회에서도 보험가입을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을 보면 그들도 가족 사랑하는 마음이 애틋한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험의 사회보장 기능이 국가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점에서도 평가 할만하다.

그런 이유로 거의 모든 국가가 보장성 보험료에 대해 세제혜택을 부여하여 보험가입을 권장하고 있다.

금슬 좋은 부부가 연로하여 같은 날 죽는 것은 아주 가끔 신문지상에서나 볼 수 있는 사례일 뿐이다. 실제로는 부인은 남편 사후 평균적으로 9.7년을 혼자 살아야 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남자의 평균 초혼 결혼 연령은 31.9세이고 여자는 29.1세이다.

같은 기관의 2012년 7월 31일자 ‘한국의 주요지표’를 보면 남자의 평균 기대수명은 77.2세인데 비해 여성의 기대수명은 84.1세로서, 여자는 남자보다 2.8세 젊은 나이에 결혼하여 6.9년을 더 사는 것으로 나온다. 결국 부인은 9.7년을 배우자 없이 살게 되는 셈이다.

이 기간 동안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보험으로 재정적 안전판을 보험을 통해 마련해 주는 것이 먼저 가는 남편의 도리가 아닌가 싶다. 남편이 남기고 간 사망보험금으로 노후를 안락하게 보낼 수 있다면 평생 남편의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음주, 흡연 및 직장생활에 따른 스트레스 등으로 여자에 비해 사망률이 높다.

이에 따라 보험사는 사망보험의 경우 여자보다 남자 보험료를 많이 받고, 반대로 연금보험 등 생존보험은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낸다.

A보험사의 가입금액 1억원 기준 종신보험의 경우 40세 남자의 보험료는 월 16만6000원인데 비해, 같은 연령의 여자 보험료는 월 9만6000원으로서 남자의 보험료가 여자 보험료보다 약 73% 많다.  

몇해 전에 어느 외국계 보험사가 TV광고에서 어느 부인이 보험금 10억을 받아 꽃미남 스타일의 보험설계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주어 많은 항의를 받은 일이 있다.

이는 보험의 보장기능을 왜곡하여 죽은 남편이 남겨 놓은 보험금으로 사치스런 삶을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주었다. 이는 보험가입 금액은 피보험 이익보다 작아야 한다는 보험원리를 무시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남편의 사망으로 받게 되는 보험금은 남편 생존시의 경제적 가치보다 작아야 하는데 도리어 남편의 사망 보험금으로 호사스런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은 보험의 본질을 왜곡한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된다.

부디 젊은 나이에 죽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자. 일찍 죽으면 서럽다. 딸 결혼식 때 손도 잡아줘야 하고 손주 재롱도 봐야 하고 내가 고생하며 불입한 연금도 오래오래 타야 한다. 오늘부터라도 술도 줄이고 담배도 줄이고 운동도 많이 하고 음식도 조절하자.

과다한 방사도 자제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도 줄이고 일도 죽을 만큼은 하지 말자. 오래오래 살아 국민연금, 기업연금, 연금보험을 100살 넘도록 꿋꿋하게 타면서 즐겁게 살아 남아 하늘에서라도 배우자가 팔자 고치는 눈꼴 시린 꼴을 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