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난, 묘지난, 화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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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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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강산이 ‘묘지강산’ 전락
장묘문화 패러다임 바꿔
지자체, 화장시설 늘리고

설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1주일 정도 지나면 비록 짧은 연휴지만 올해도 민족 대이동이 시작될 것이다. 객지에 흩어졌던 자손들이 고향을 찾아 가족 및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것은 우리의 좋은 세시풍속이다. 세배와 성묘도 빼놓을 수 없다. 세배가 살아계신 웃어른에 대한 새해 인사라면 성묘는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선대 묘소 관리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묘소를 쓸 땅도 마땅치 않을뿐더러 관리도 쉽지 않다.

우리 국민의 1인당 주거면적은 4.3평이지만 죽은 자의 묘지는 이보다 3.5배나 넓은 평균 15평에 이른다고 한다. 실제 전국에 널린 2100만기의 분묘 면적은 998㎢로 전 국토의 1%, 전국 주택면적의 절반, 공장면적의 3배, 서울시 면적의 1.6배에 달한다. 여기에 매년 20여만기의 분묘가 늘어나 여의도 면적의 1.2배인 9㎢를 잠식한다고 하니 묘지강산이 따로 없다. 이런 추세라면 2050년엔 전국 어디서나 묘지 쓸 곳이 없어 살아서는 주택난, 죽어서는 묘지난에 시달려야 할 판이다.

조선시대 유교 영향으로 정착된 매장문화는 화장 후 납골당 안치 때보다 장묘비용이 평균 30% 더 든다. 대부분 산이나 숲을 파괴하는 탓에 경관 및 생태계 파괴, 산사태 붕괴, 토양침식, 수질오염 등 환경훼손이 불가피하다. 산림훼손에 따른 온실가스 흡수능력까지 감안하면 분묘 조성은 이제 재고할 때가 됐다.

사회지도층 인사와 종교계 등의 노력으로 장묘문화 패러다임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1997년 23.3%에 그쳤던 화장률은 2005년 매장률을 앞섰고 2007년 58.9%, 2008년 61.9%로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충남 충북 전남이 30%대에 그치고 있고, 특히 전남 보성과 전북 순창은 10%대에 불과하다. 일본 중국의 화장률 90% 이상, 유럽의 70% 이상에는 아직 턱없이 낮다.

국민들의 화장 인식은 많이 개선됐으나 화장 환경은 이에 크게 못 미친다. SK가 지난달 고 최종현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500억원을 투입, 세종시에 최신식 종합장묘문화시설인 ‘은하수공원’을 완공ㆍ기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 서초구 원지동 주민 반발에 부딪쳐 세종시로 내려간 은하수공원은 10곳의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 화장로 10기를 갖춘 화장장, 2만1442기를 수용할 납골 봉안당, 6만8000㎡  규모의 자연장지 등을 갖춘 원스톱 장묘시설로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견학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년 말 현재 전국 화장시설은 모두 49개로 지난 20년 동안 겨우 10개 증가에 그쳤다. 서울의 경우 벽제 화장장 1곳뿐으로 이곳을 이용하려면 4일장, 5일장을 감수하거나 그러잖으면 할증료를 부담하고 성남 수원 등 타 지역 시설로 이동해야 한다.

화장 후 납골 보관도 만만치 않다. 지금은 보편화한 납골묘 납골당 납골탑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환경훼손이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수목(樹木)ㆍ잔디ㆍ화초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는 자연장(自然葬)과 일정 장소에 그대로 뿌리는 산골(散骨) 등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납골묘 공급난과 관리비용을 해결할 일석이조의 친환경 장묘문화라 할 수 있다.

묘지난, 화장난을 개선하려면 정부와 지자체가 더 분발해야 한다. 장묘시설 종합정보시스템 구축, 화장시설과 자연장림 확충을 위한 규제완화 등에 더 신속하게 촘촘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화장 때 뿜어낼 연기가 필요 없는 급속냉각 방식 도입도 검토할 만하다. 기초단체에 대한 화장시설 건설 인센티브는 파격적이어야 한다.

이번 설엔 향후 조상 묘소를 어떻게 관리하고, 연로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또 나는 죽으면 어떻게 자연으로 돌아갈 것인지 한 번쯤 고민했으면 한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 나설 자치단체장 후보들도 공약으로 내세워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