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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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5-10-0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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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교수는 69세에 ○○암 진단을 받고 5년 후 돌아가셨다. 그분의 따님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진단 확정 뒤 P 교수는 '수술 후 자신의 여명(餘命, 남은 생명)'과 '지금 이 상태에서 얼마나 살 수 있는가'를 타진한 뒤 수술하지 않기로 하고 가족에게 전했다. 애석해 하는 가족들에게 그는 몇 년 더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지금 이렇게 정신이 있을 때 내 삶을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단호히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다음, P 교수는 자신의 주변(자신의 방, 책상에 있던 여러 물건 등과 법적 조치들)을 정리하면서 묘지를 보러 다녔다. 물론 가족들에게 장례절차와 부고(訃告)를 전해야 할 이들의 명단과 연락처도 직접 일러 주었다. 당신께서 직접 장례식장을 방문해 관과 수의 등도 주문해 두고, 심지어 주검 정돈과 입관 등을 맡아 하는 장례지도사까지 만나 '허허' 웃으시면서 '잘 부탁하오'라는 인사도 하셨다고 한다. 정말 처음 들을 때는 눈물이 나는 이야기였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기꺼이 자신의 마지막을 헤아려 보면서 준비하신 분으로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당연히 닥치는 일들인데도 우리는 그 일이 나의 일이라고는 잘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P 교수의 사례를 듣고 보니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마감을 해야 하는지, 그 전에 무엇을 챙겨 두어야 하는지를 정신이 온전할 때 챙겨서, 가족들에게 일러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아마 누군가는 '자식들이 다 해 주겠지…'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미루어 두는 것보다는 스스로 임종을 바라보고 주변의 일을 챙기고 일러두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 외에, 장례계획에서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떠남을 가족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배려'를 가지는 것이다. 물론 죽음을 준비하는 분에 대한 '가족들의 배려'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장례 계획을 남는 자의 관점보다는 가는 자의 관점에서 적기 때문에 떠나는 사람의 정리(情理)를 더 보고자 한다. 
P 교수는 남은 5여 년 동안 참 바쁘셨다. 병원 다니는 중간중간에 친구와 먼 친척들을 만나러 다녔고, 자녀들과도 수차례 식사를 하면서, '지금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구나' 하면서, 정말 죽음을 앞에 둔 처지가 아니면 수많은 이해관계와 이기심 때문에 바로 보지 못했던 것을, 자녀들에게 들러주셨다.

담담히 병고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입장에서 들려주신 말은 정말 자녀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절대 싸우지 마라, 인생은 바라다보면 대단한 것 같지만 지금 굽어보니 별것이 아닌 것 같구나-그러니 욕심 내지 말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셨다고 한다. 자녀들에게 인생의 정수(精髓)를 빈 마음으로 순수히 전해주신 그분의 마지막 장례 계획은 너무 멋있었다.

우물쭈물하다가 어찌 이 지경이 되었는가가 아닌,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것을 깨치고 그걸 일러주는 것이 진정 죽음 준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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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숙                                                             
                                                                            전 신라대 교수
                                                                            국제죽음교육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