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며] 한국의 장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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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4 08:27본문
얼마 전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 다음 날, 검정색 옷을 입고 장례식장에 갔다. 내가 한국에 와서 장례식에 간 것은 이번으로 두 번째다. 지난해 학과 교수가 갑작스럽게 숨져 장례식장에 간 적이 있다. 무릎을 꿇어 절한 것 외에는 딱히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친구 어머니 장례식장에서는 풍경이 조금 달랐다. 바닥에 상을 차려 놓고 건과와 오징어, 쥐포 등의 간식이나 밥, 국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몇 사람은 아예 식사를 하지 않고 얘기만 나누기도 했다.
나는 앞서 장례식장에 들어가자마자 내 앞에 서 있던 한국친구를 따라 고인의 유족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경험과 달리 이번에는 고인의 사진 아래에 과일이 놓여 있었다. 나와 나란히 서 있던 4명이 그 사진을 향해 머리를 수그렸다. 기도를 하는 지 그냥 경례를 하는 지 잘 모르는 나는 눈치만 보다가 어색하게 따라했다. 그리고 고인의 가족과 마주보며 절을 했다. 지난해에도 절을 해봤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친구의 등을 가볍게 터치한 뒤 다른 친구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갔다. 그런데 친구들과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 옆 테이블에서 묘한 풍경을 목격했다. 아저씨 5명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것을 보며 조금 놀랐지만 곧 시선을 돌렸다. 한국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 다음 날, 검정색 옷을 입고 장례식장에 갔다. 내가 한국에 와서 장례식에 간 것은 이번으로 두 번째다. 지난해 학과 교수가 갑작스럽게 숨져 장례식장에 간 적이 있다. 무릎을 꿇어 절한 것 외에는 딱히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친구 어머니 장례식장에서는 풍경이 조금 달랐다. 바닥에 상을 차려 놓고 건과와 오징어, 쥐포 등의 간식이나 밥, 국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몇 사람은 아예 식사를 하지 않고 얘기만 나누기도 했다.
나는 앞서 장례식장에 들어가자마자 내 앞에 서 있던 한국친구를 따라 고인의 유족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경험과 달리 이번에는 고인의 사진 아래에 과일이 놓여 있었다. 나와 나란히 서 있던 4명이 그 사진을 향해 머리를 수그렸다. 기도를 하는 지 그냥 경례를 하는 지 잘 모르는 나는 눈치만 보다가 어색하게 따라했다. 그리고 고인의 가족과 마주보며 절을 했다. 지난해에도 절을 해봤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친구의 등을 가볍게 터치한 뒤 다른 친구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갔다. 그런데 친구들과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 옆 테이블에서 묘한 풍경을 목격했다. 아저씨 5명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것을 보며 조금 놀랐지만 곧 시선을 돌렸다. 한국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내 반응은 확실했을 것이다. 아저씨 행동은 사람들의 얘깃거리가 충분히 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화나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행동을 한참 동안 생각하고 있으니 한 언니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넌지시 설명했다. "저건 우리나라의 장례문화가 아니야." 그 언니의 말 한 마디에 그들은 그냥 예의없는 사람들로만 비쳤다. 자칫 한국의 장례문화를 오해할 뻔했던 것이다. 캐런 삼로니(인도네시아)·경성대 건축공학부 4년
그런데 친구 어머니 장례식장에서는 풍경이 조금 달랐다. 바닥에 상을 차려 놓고 건과와 오징어, 쥐포 등의 간식이나 밥, 국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몇 사람은 아예 식사를 하지 않고 얘기만 나누기도 했다.
나는 앞서 장례식장에 들어가자마자 내 앞에 서 있던 한국친구를 따라 고인의 유족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경험과 달리 이번에는 고인의 사진 아래에 과일이 놓여 있었다. 나와 나란히 서 있던 4명이 그 사진을 향해 머리를 수그렸다. 기도를 하는 지 그냥 경례를 하는 지 잘 모르는 나는 눈치만 보다가 어색하게 따라했다. 그리고 고인의 가족과 마주보며 절을 했다. 지난해에도 절을 해봤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친구의 등을 가볍게 터치한 뒤 다른 친구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갔다. 그런데 친구들과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 옆 테이블에서 묘한 풍경을 목격했다. 아저씨 5명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것을 보며 조금 놀랐지만 곧 시선을 돌렸다. 한국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 다음 날, 검정색 옷을 입고 장례식장에 갔다. 내가 한국에 와서 장례식에 간 것은 이번으로 두 번째다. 지난해 학과 교수가 갑작스럽게 숨져 장례식장에 간 적이 있다. 무릎을 꿇어 절한 것 외에는 딱히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친구 어머니 장례식장에서는 풍경이 조금 달랐다. 바닥에 상을 차려 놓고 건과와 오징어, 쥐포 등의 간식이나 밥, 국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몇 사람은 아예 식사를 하지 않고 얘기만 나누기도 했다.
나는 앞서 장례식장에 들어가자마자 내 앞에 서 있던 한국친구를 따라 고인의 유족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경험과 달리 이번에는 고인의 사진 아래에 과일이 놓여 있었다. 나와 나란히 서 있던 4명이 그 사진을 향해 머리를 수그렸다. 기도를 하는 지 그냥 경례를 하는 지 잘 모르는 나는 눈치만 보다가 어색하게 따라했다. 그리고 고인의 가족과 마주보며 절을 했다. 지난해에도 절을 해봤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친구의 등을 가볍게 터치한 뒤 다른 친구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갔다. 그런데 친구들과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 옆 테이블에서 묘한 풍경을 목격했다. 아저씨 5명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것을 보며 조금 놀랐지만 곧 시선을 돌렸다. 한국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내 반응은 확실했을 것이다. 아저씨 행동은 사람들의 얘깃거리가 충분히 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화나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행동을 한참 동안 생각하고 있으니 한 언니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넌지시 설명했다. "저건 우리나라의 장례문화가 아니야." 그 언니의 말 한 마디에 그들은 그냥 예의없는 사람들로만 비쳤다. 자칫 한국의 장례문화를 오해할 뻔했던 것이다. 캐런 삼로니(인도네시아)·경성대 건축공학부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