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페이지 정보

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4 08:24

본문

일본인이 죽은 척하며 길가에 누어 보았더니, 보는 사람마다 “돌아갔다”, “밥숟갈 놨다”, “숨을 거뒀다”, “황천 갔다”, “뒈졌다” 등 너무나도 다양하게 말하므로 한국어 배우기를 포기하고 말았다는 우스개 얘기가 있다. 우리말의 어휘가 풍부함을 드러내느라 만들어진 이야기로 보인다. 실제로 우리말에 얼마나 많은 죽음 관련 어휘가 있는지 살펴볼 생각이 든다.

‘서거’는 ‘별세’보다 더 의례적인 표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방송사마다 ‘사망’이라 하다가 시청자들의 항의 때문인지 곧 ‘서거’로 바뀌었다. 죽은 사람이 대통령 등 국가원수급이라면 ‘사거’의 높임말인 ‘서거’로 하는 게 맞다. 비중 있는 인사의 부음엔 ‘별세’로 족하다. 황제의 죽음은 ‘붕어’, 왕의 죽음은 ‘승하’라 하고, 제후에겐 ‘훙서’를 쓴다.

불교에선 ‘열반’ ‘해탈’ ‘입적’이라 이르며, 개신교에서는 ‘소천’이라 한다. 며칠 전에 ‘사랑의 교회’ 옥한음 목사를 하늘이 불렀다 하여 ‘소천’이라 했다. 연전에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셨다. 착하게 살고 복되게 생을 마친 것이다. 죽음을 점잖게 ‘기세’라고도 하는데, 세상을 버린다는 의미다. 군인과 열사의 죽음은 ‘산화’와 ‘순국’이고, 죄인의 죽음은 ‘물고’다. 아내가 죽으면 ‘단현’이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천붕’, 어머니의 죽음은 ‘지붕’이다.

예전엔 없는 일을 꾸며 죄로 몰아 ‘구살’하기도 했다. 별안간 그야말로 ‘급살 맞는’ 수도 있다. 북한에 ‘아사자’가 생겼다 한다. 감옥에서 ‘뇌사(牢死)’하고, 성인병으로 요즘 ‘돌연사’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약력에는 ‘몰’하거나 ‘졸’했다고 적는다. ‘안락사’에다가 ‘복상사’도 있다.

‘자살’은 물론 ‘요절’도 안 될 일인데, 요즘 세계적으로 죽는 일이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수십 명 수백 명이 한꺼번에 죽는 사건이 터진다. 지난 주에도 파키스탄에서 폭탄테러로 25 명이 한꺼번에 사망했다. 짧게 휙 지나간 태풍 곤파스로 5 명의 희생자가 생겼다. 올 가을 두어 차례 태풍이 또 찾아온다니, 두루 조심할 일이다. 뜻밖의 재난이나 사고 따위로 죽는 그 ‘비명횡사’를 당하진 말아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