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 공동묘지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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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4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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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 가장 설레는 순간이 언제입니까? 전 출근 후 컴퓨터를 켤 때입니다. 하루 일과를 이메일 여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밤새 도착한 많은 편지 가운데 그래도 반가운 것들은 애정을 가진 분들이 보내준 격려와 채찍의 메시지입니다.

오늘의 시작도 여느 때와 같았습니다. 출근하자마자 이메일 체크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섬뜩한 메일(?) 한 통이 와 있었습니다. 망우리 공동묘지를 산책하자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망우리 공동묘지를 답사할 예정입니다. 동행하면 어떨까요?”
끝까지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편지의 서두를 보는 순간 ‘참 이상한 편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난인가? 하필이면 많고 많은 곳 가운데 왜 망우리 공동묘지를 산책하자고 했을까?

계속 읽어야 할까 망설여지기도 했습니다. 요즘 이상한 스팸메일이 수도 없이 많이 오는 터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서 읽어 내려갔습니다.
“망우리는 이제 예전의 공동묘지가 아닙니다. 숲이 우거져 있고,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공원으로 변해 있습니다. 가벼운 등산코스와 같아 산행의 즐거움도 누릴 수 있습니다. 시간은 대략 4~5시간이 되고, 간단히 저녁도 먹을 예정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그날이 투표하는 날인데, 투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산행을 한다? 수도권에 많고 많은 등산코스, 산책코스가 있는데 웬 망우리? 그것도 3~4시간 동안이나? 그렇다면 더욱 갈 이유가 없는데?

이메일을 보낸 사람의 이름을 찾아봤습니다. 연초에 만난 적이 있는 출판사 최고경영자(CEO)였습니다. 그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그때도 그는 불확실성 시대를 살고 있는 대학생 5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책 <이십대 전반전>을 출간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십대 전반전>은 5명의 서울대 재학생들이 불안을 강요하는 세상에 던지는 옐로카드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곳에는 시인 박인환, 화가 이중섭, 만해 한용운, 죽산 조봉암 선생님의 묘소가 있습니다. 그곳을 답사하려고 합니다.”

동반자는 누군지 모르지만 3명은 분명했습니다. 저와 김영식, 박종평씨. 김영식이라는 분은 <그와 나 사이를 걷다-비명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를 쓴 분이었고, 박종평씨는 이 책을 낸 출판사(골든 에이지) 사장이었습니다.

그제서야 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 역사의식이 부족하고 삶의 철학이 빈약한 저에게 망우리에서 삶과 사랑과 역사를 만나게 해준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망우리. 글자그대로 근심을 잊는 곳(忘憂)입니다. 서울시 중랑구와 경기도 구리시의 경계에 있는 곳이죠. 이곳에는 공동묘지가 들어섰고 그래서 삶과 죽음의 경계지로 인식돼 왔습니다.

이곳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인들과 한 시대를 말없이 살다간 보통사람들이 함께 쉬고 있습니다. 김영식씨는 이곳을 “살아서는 큰 차이가 있었을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피해갈 수 없는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웅변해 주는 장소”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교훈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역사책과 교과서에서 봐 왔던 다양한 인물들의 삶, 사랑, 역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몰라서 잊었고 알고도 잊었던 깜짝 놀랄 인물들의 가까이에서 주역들의 삶을 읽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알고 보니 그곳에는 시인 박인환, 화가 이중섭, 작가 최학송, 작곡가 채동선, 가수 차중락, 야구인 이영민, 만해 한용운,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 의사 지석영, 도산 안창호, 죽산 조봉암 선생님 등이 계셨습니다.

시인, 화가, 작곡가, 독립운동가, 정치인, 가수 등이 생전의 직업과 출신과 관계없이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위 아래로 함께 쉬고 있었습니다.

박종평씨는 처음 망우리에 관련한 책의 원고를 접하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왜 하필이면 공동묘지에 관한 책이냐? 그 책을 출간한들 팔리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고를 접하고 생각을 바꾸게 됐다고 합니다. ‘그분이 거기에 계셨어요?’ → ‘아니 그분도 거기 있네요’ → 몰랐어요. 정말로 그런 분들이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한번 찾아가봐야겠네요.’로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김영식 작가의 눈에 비춰진 망우리는 이렇습니다.
“망우리공원이라는 작은 공간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살다 간 인물들을 비명을 통해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작지만 크고, 유일한 공간입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그 어느 때보다 파란만장한 우리 역사가 그곳 비석에서 숨을 쉬고 있습니다. 당시를 살다간 고인의 비문에서, 또는 비문이 준 단서에서 그 시대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각 분야의 개척자와 선구자들이 그곳에 따로, 또 같이 누워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특별한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와 같은 모습으로 잠든 국립묘지는 건조합니다. 그에 비해 이곳 망우 ‘공동(共同)묘지'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다 간 다양한 인물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역사 공간이자 오늘의 축소판입니다.

유명무명의 독립지사뿐 아니라 친일과 좌익의 멍에를 짊어진 죽음, 시대가 만든 억울한 죽음도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시인, 소설가, 화가, 작곡가, 가수, 의사, 학자, 정치가 등 다양한 삶이 있습니다.

비록 대중의 기억 속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지만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연민과 사랑을 새긴 그 시대의 수많은 보통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망우리 공원에서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살다간 인물’들을 찾아 산책을 하자는 제의-그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망우리. 그곳은 죽은 자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으스스하고 외진 곳, 담력 테스트를 하는 공동묘지도 아닙니다. 죽은 여인이 승천하지 못하고 귀신이 되고, 그 귀신이 복수를 시작하는 ‘월하의 공동묘지’가 연상되는 곳은 더욱 더 아닙니다.

삶과 죽음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곳, 우리의 근현대 역사와 문화를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명소(?)나 다름없는 곳이 됐습니다.
죽은 자의 마을에서 죽은 자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현재를 반성하며 근심을 잊어(忘憂) 보시면 어떨까요?
권대우 아시아경제,이코노믹리뷰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