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도 눈여겨 본 기록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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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4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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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오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실사단이 한국국학진흥원을 방문하였다. 직접적인 방문 목적은 현재 세계문화유산 지정 신청 작업이 진행중인 전통민속마을인 경주 양동 마을과 안동 하회 마을 현장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이들은 옛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마을에 남아 있는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두 마을에 보관되어 있던 기록문화유산 가운데 꽤 많은 수량이 한국국학진흥원의 장판각과 수장고 그리고 전시실로 옮겨 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네스코 실사단은 옛 사람들의 기록유산들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였다.

선조들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흔적

전통민속 마을의 건축물과 보존되어 있는 유적과 유물을 조사하는 것은 흔히 생각할 수 일이다. 그런데 유네스코 실사단은 이 마을에 살았던 분들의 삶과 정신이 담겨 있는 고서와 고문서 그리고 목판들까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유네스코 실사단은 8만5천여점의 고서와 12만여점의 고문서 그리고 5만7천여장의 목판이 소장된 현장을 돌아보고 과학적인 관리 방법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면서 양동과 하회 마을에서 아직까지 이곳에 기탁되지 않은 자료의 현황이 파악되어 있느냐고 물었다. 그의 질문은 민간에 보관된 자료가 이처럼 과학적으로 관리되는 곳으로 수습되지 않으면 머지않은 시점에 소멸될 것이라는 걱정이 담겨져 있었다.

이러한 때 한국국학진흥원이 전개하고 있는 기록문화유산을 수집하는 사업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짚어보고 반성의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선조들의 기록유산에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문집 속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와 국왕의 실정을 탄핵하는 상소문과 현실의 문제들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 등 다양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는 조선중기 이후 정치권력으로부터 멀어진 이 지역 선비들이 세상을 보는 시각과 철학이 담겨 있다. 그들은 도의와 절의를 숭상하면서 자연을 벗하고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그런 까닭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상소를 올렸고,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의병으로 의로운 깃발을 높이 들고 분연히 일어나 외적에 맞섰다. 그 과정에서 겪었던 고초와 아픔이 상소문의 초안으로, 또 전쟁일기로 남아 있다.

이러한 기록은 양반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민초들 사이에서도 기록물은 전해져 온다. 흉년에 양식을 구하러 객지로 떠난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치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자신을 노비로 팔아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부잣집의 노비가 되는 문서가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면서 애틋한 감정을 표현한 간찰이라는 옛 편지도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서 잘 각색이 된다면 천 만의 관람객을 모을 수 있는 영화의 주제가 될 수도 있고, 시청률 40%를 기록할 수 있는 드라마의 테마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원자료는 수 없이 많지만 그것을 가공해 낼 눈 밝은 사람의 눈에 그러한 자료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관리되고 보존되어야 할 고문서

지난해 2월 10일 밤 남대문이 불에 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발을 구르면서 안타까워하였다. 그런데도 왜 주변에서 버려지고 있는 또 다른 남대문을 수없이 보면서도 안타까운 줄을 모르고 있을까. 아직도 고서와 고문서들이 다락 속에 곰팡이에 삭아가고 목판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현장을 목격할 때면 안타까움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조들이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은 안전하게 보존되어 후손에게 전해져야 한다. 귀중한 문화유산을 소중하게 지키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다. 이 의무를 성실하게 하지 못하고 훼손시키나 망실시켰을 때 우리는 다음 세대에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집안에서 소중하게 보관하던 선조들의 유품이 훼손되어 복원이 불가능한 다음에야 '왜 안전한 보존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을까'라고 안타까워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삶의 여정을 알 수 있는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다. 문화 행사가 많은 가을의 문턱을 넘고 있는 이 계절에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아쉬운 때이다.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