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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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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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철이다. 이 시기에 전국의 산은 제초기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럽다. 끙끙거리며 오지에 묻혀 있는 묘를 찾아내 말끔하게 묘지를 정리하거나, 한 해를 걸러버린 탓에 묘를 찾지 못해 당혹한 포즈로 우두커니 산 중턱에 서서 숨을 헐떡거리기도 한다. 벌초는 수확의 계절이 오기 전에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좋은 결과가 있기를 소망하는 전통적인 습속으로 볼 수 있는데, 최근 화장장의 증가추세에도 여름이 끝나는 무렵에는 고속도로 정체를 불러일으킬 만큼 전국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아니, 추석이나 명절에 고향을 방문하는 것만큼이나 이 의례는 '일반화'되어 있으며 후손들에게 어느 정도 강제사항으로 부과되어 있는 형편이다. 자발적이라고 오인하지만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죽음을 처리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매장에서 화장으로 혹은 수목장 등으로 이동하고 있고 매장된 묘에 관한 법적 조치가 취해져 있지만, 매년 반복되는 '의례' 자체에 그리 큰 변화는 없다는 점이다. 벌초가 사회적 의례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집단적이거나 집합적인 '애도'의 과정에 동참하는 데에 적극적인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기반으로 주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 정권이 1969년 '가정의례준칙'(1973년 강화된 대통령령오로 다시 규정)을 선포하고 엄격하게 지킬 것을 요구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되었던 개별적 의례를 국가적 목적에 맡게 통합하여 특정한 시기마다 반복되는 '죽음'(과 그것에 따르는 의례)을 재구성하려 했던 것은 개별적 의례를 보편화하고 규범화함으로써 사회의 '도덕률'을 구성하고 '정서'를 조직할 수 있어서이다. 이는 개별적 의례의 연장선 위에 초월적인 국가적 의례를 설정하고 거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형식을 구조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해, 국가적 애도를 설정하는 것에 대해 과도한 국민적 저항이 생성되지 않으며 이를 일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하는 데 유용한 셈이다. 실제로 국민국가가 형성된 이후 수없이 많은 신성함의 표지를 뒤집어 쓴 국가묘지가 도처에 생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국가묘지'가 순국선열의 영혼을 기리는 실제 묘지에 국한되지 않으며 영화나 극장, 문학, 미디어, 예술, 스포츠, 공원, 스타시스템 등도 '국가묘지'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이승만 동상이나 이순신 동상과 같은 조형물을 대표적인 국가묘지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조형물들이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욕망과 삶의 양식을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봉합해온 일등 공신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개별적 기억을 보존하는 의례가 무조건 국가기억으로 전이되지 않지만, 벌초를 수행하는 것 자체가 사회의 도덕적 표준으로, 개별적 기억을 보존하는 양식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국가적 기억과 역사를 구성하는 양식에 쉽사리 자리를 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한 이 제의들, 즉 동상들에는 다양한 낙서가 그려지기도 하고 불량한 행위가 이루어지기도 해서, 우리의 행위 모두가 제의에 포획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자. 주말, 벌초를 다녀왔더니, 자판을 치는 손이 덜덜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