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그 오래된 새 길을 가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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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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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질서를 보는 다른 시각 오행론 -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생사의례학과 외래교수  이 철 영

이번 글의 주제는 오행론이다. 지난시간 음양론에 대한 대략적인 흐름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였지만 이론적 배경에 대한 공부가 있어야 공부의 깊이가 더해지는 법이다. 아울러 이렇게나 재미없는 논리체계가 어떻게 정형화되고 우리 삶의 곁에 그리도 오랫동안 함께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그리 성가신 일은 아닐듯하다.

그러나 그 성가심 속에 함께 녹아있는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어 써야하기 때문에 번거롭지만 이번 글까지는 이렇게 딱딱한 글로 대신하고자 한다. 앞일이라 모르긴 해도 아마 이렇게 딱딱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 땅에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그날까지 말이다. 잡다한 이야기는 뒤로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오행설은 음양설과 마찬가지로 중국 자연 철학의 일종이며 세계관으로 만물의 생성·변화·소멸을 오행의 변전(變轉)으로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오행론은 음양설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음양오행설로 불리고 있다. 동양의 참위설(讖緯說)도 음양오행론을 바탕으로 설명되고 있다. 오행이란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다섯 원소를 말한다. 이 다섯 원소가 우주 사이를 유행, 변전해 만물을 생성한다는 것이 초기의 오행설이었다.

특히, 이 다섯 원소가 선발된 것은 그것들이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다섯 가지 요소이기 때문이다. 오행설은 그 뒤 많은 방면에 응용되고 종교적인 예언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오행설의 기원은 서기전 4세기 초라고 알려져 있다. 오행설의 근거가 되는 출처는 ≪서경≫의 홍범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은왕조의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에게 전한 말을 기록한 것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여러 시대에 걸친 단편적인 글들로 이루어져 있음이 밝혀져 있다. 여기에 나타나 있는 관련 부분은 “오행에 관하여 그 첫째는 수(水)이고, 둘째는 화(火), 셋째는 목(木), 넷째는 금(金), 다섯째는 토(土)이다. 수의 성질은 물체를 젖게 하고 아래로 스며들며, 화는 위로 타올라 가는 것이며, 목은 휘어지기도 하고 곧게 나가기도 하며, 금은 주형(鑄型)에 따르는 성질이 있고, 토는 씨앗을 뿌려 추수를 할 수 있게 하는 성질이 있다. 젖게 하고 방울져 떨어지는 것은 짠맛[鹹味]을 내며, 타거나 뜨거워지는 것은 쓴맛[苦味]을 낸다. 곡면(曲面)이나 곧은 막대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신맛[酸味]을 내고, 주형에 따르며 이윽고 단단해지는 것은 매운맛[辛味]을 내고, 키우고 거두어 들일 수 있는 것은 단맛[甘味]을 낸다.” 이와 같이, 오행의 개념은 다섯 종류의 기본적 물질이라기보다는 다섯 가지의 기본 과정을 나타내려는 노력의 소산이며, 영원히 순환운동을 하고 있는 다섯 개의 강력한 힘을 나타낸다.

이러한 음양오행 사상이 체계적으로 정립된 것은 제(齊)나라 추연(鄒衍)에 의해서이다. 이른바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이 그것이다. 그는 종래부터 전해 내려오던 오행설을 종합, 정리해 우주 사이의 모든 변화는 오행의 덕성(德性), 즉 그 운행에 의한 것이라며, 이른바 오행상승설(五行相勝說)을 제기하였다. 그에 의하면 오행의 상호 관계는 “목(木)은 토(土)를 이기고, 금(金)은 목을 이기고, 화(火)는 금을 이기고, 수(水)는 화를 이기고, 토는 수를 이긴다.”고 하는 순환, 즉 상승(相勝)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사계절의 추이(推移)나 방위로부터 왕조의 흥망 등 모든 현상의 변화에 적용된다고 하였다. 가령 하왕조(夏王朝)는 목덕(木德)이지만 하왕조를 대신해 일어난 은왕조(殷王朝)는 금덕(金德)이며, 그 은왕조를 대신해 일어난 주왕조(周王朝)는 화덕(火德)이라고 한다. 이러한 설명들은 전국시대 말엽부터 시작, 한나라 초엽에는 화북 지방에 널리 퍼져 있었다. 한나라의 기초가 확립되면서 새롭게 오행상생설(五行相生說)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목은 화를 낳고, 화는 토를 낳고, 토는 금을 낳고, 금은 수를 낳고, 수는 목을 낳는다고 하여 상승설처럼 왕조의 교대·순서는 물론 그 밖의 현상들을 설명하였던 것이다. 한나라 때 발전한 오행설은 선진시대(先秦時代)와 비교해 내용이 더욱 풍부해지는데, 계절·방위·색(色)·맛·음(音)에 이르기까지 오행을 배당하게 되었다. 음양오행은 원래 우주의 본체가 인간에게 부여해 준 영향에 대해 설명한 것이었는데, 한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반대로 인간이 질서 있는 생활을 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우주나 자연의 운행에 영향을 준다는 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설이 완성되고 재이(災異)에 대한 예언을 하며, 정치나 도덕뿐만 아니라 점성(占星)·율력(律曆)·의술(醫術)·점(占)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주며 이론의 범위를 확대하게 된다. 이러한 논의는 ≪관자 管子≫의 사시편(四時篇)과 유관편(幼官篇)에 전해지고, 이 두 편이 다시 ≪여씨춘추 呂氏春秋≫에 채용되어 ≪회남자 淮南子≫의 시측십이기(時則十二紀)에 이르러서 마침내 ≪예기≫ 월령(月令)의 성립을 이루게 된다. 월령이란 군주가 일반 백성들에게 내린 월중행사표로서 매달마다 그 달에 알맞은 시령을 행하지 않으면 천시(天時)에 영향을 주어 괴변이 생긴다고 여겼던 것을 이른다. 이러한 작업은 정치적·사회적 질서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것으로 음양오행의 이론과 유가적인 정치철학을 결부시킨 결과로 이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교도덕적인 오상(五常), 즉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이 오행과 관련을 맺게 되는데, 구체적으로 인(仁)은 목(木)과 동(東)에, 의(義)는 금(金)과 서(西)에, 예(禮)는 화(火)와 남(南)에, 지(智)는 수(水)와 북(北)에, 신(信)은 토(土)와 중앙(中央)에 연결되어진다.

결국 앞서 논의한 음양론과 결합한 음양오행의 작용을 세계의 기본적 구성원리로 인식하는 성리학적 세계관이 정립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실학자들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비판되기도 하지만, 조선시대 말까지 이러한 음양오행론은 유교적 세계관과 동일시되면서 우리 민족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쳐왔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 때문에 오래된 새 길을 가기위한 이정표로 음양오행론이 중요한 위치를 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재미없는 이야기도 오늘로 그만이니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 한고비 산을 넘어 멀리 목적지가 보이는 듯하다. 마치 추운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꽃망울을 터트린 봄꽃의 싱그러움을 보는 것 같다.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