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죽음

페이지 정보

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2 14:35

본문

최서.jpg
 
 
 
 
 
 
 
 
 
 
 
 
 
 
 
 
 
 
 
최서윤(죽음준비교육강사, 호원대 강사)
 
죽음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더욱이 행복한 죽음이 어떤 것인지 누가 물어 본다면 어떻게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죽음에 행복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지 조차도 생각해 본 적이 없으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죽음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겐 필연적으로 해당 되는 것이지만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은 어느 누구도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사람은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이 잉태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태어나는 순간부터 살아가야 하는 문제 못지않게 죽음의 문제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성공을 추구하면서 죽음의 문제는 잊고 살고 싶어 하지만, 죽음은 언제나 삶의 그림자로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지금 ‘웰빙’을 외치면서 그 속에 ‘웰다잉’이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인정하든 안하든 ‘웰빙’과 ‘웰다잉’은 우리의 생활 속에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살아야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은 피하고 싶은 금기의 영역이고, 노인에게 국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생명을 가진 누구에게라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반드시 죽음과 마주대하게 되기 때문에 죽음은 준비하고 맞이하여야 할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무소유의 삶의 살다가 이제 우리곁을 떠나가신 법정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살아 있을 때 주면 선물이 되고 죽고 나서는 유품이 되니 선물을 많이 하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스님의 바람대로 관도 쓰지 않고, 만장도 하지 않고, 사리도 수습하지 않은 사람들이 커 보입니다. 또 작년에 가신 김수환 추기경님 역시 죽음을 준비하고 맞으신 분이십니다. 특별한 사람들만 죽음을 준비하고 맞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죽음을 늘 기억하고 준비를 하고 죽음과 만나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하루하루가 바쁜 세상이고,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는 기분 나쁜 죽음을 미리 준비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혹 주위에서 젊은 나이에 병마와 싸우면서 죽음과 대면하는 것을 보든지, 어린아이들이 암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면 그들은 소수의 불행한 사람으로 여겨 연민을 느낄지언정 나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잠자리에 들면서 다음날 아침에 깨어날 것을 의심하지 않고 잠들지만, 깨어남의 확실한 보장은 없습니다. 죽음이 어느 순간에 우리에게 닥칠지 모릅니다. 특히 현대사회의 다양성과 수많은 위험요소들은 더욱 죽음의 순간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죽음은 또 다른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죽음과 관련해서 노인 분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잠자듯이 평안한 죽음을 소망하지만 어떻게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제가 지켜 본 임종 중에서 정말이지 보고픈 사람을 보지 않고는 눈을 못 감으시는 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보고파하는 사람이 와서 얘기를 나누고는 바로 임종을 맞으셨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용서를 받아야 할 일이 남아있고, 화해를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어떻게 편안한 임종을 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죽음을 맞이하는 때는 언제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다니던 대학원 교수님께 “교수님 언제까지 살다 가고 싶으십니까?”라고 감히 여쭈었을 때 교수님은 바로 “적어도 70세까지는 건강하게 살고 그 다음은 그 때가서 생각해 보아야겠다”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60대이시면서 이런 대답을 해 주신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동안 죽음준비교육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언제까지 살고 싶은지를 물으면 보통 지금 나이에 40년 정도를 더 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응답하신 분들은 한결 같이 건강하게 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건강은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모두를 포함합니다. 마음속에 미움이 자리하고 있는데 평온한 얼굴을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를 보면 어르신들께서 평소에 이제 여한이 없다고, 빨리 죽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100세 생일이 지났다고 해서 또 자녀가 부모의 바람대로 성장해 주었다고 해서 또 내가 바라던 성공을 이루었다고 해서 지금 죽어도 담담히 죽음을 수용 하실 수 있을까요?

아무리 완벽한 죽음 준비를 하였다고 생각해도 죽음의 순간이 닥친다면 우리는 당황하고 힘들어할 것입니다. 죽음을 준비하자고 말씀드리는 저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우리는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고 있을까요. 제가 쓴 책에 <100세에 내가 듣고 싶은 말>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이 코너는 본인이 죽기를 희망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배우자에게 또는 자녀들에게는 그리고 지인들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 적어보는 것 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삶의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가령 친구00(예:홍길동)에게 ‘넌 참 배려심이 깊고 지혜로운 친구야’ 또는 ‘너 참 열심히 살았어. 좋은 아빠로, 멋진 남편으로, 착한 아들로, 성실한 친구로 말이야’라 는 말을 듣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부터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 자제분들에게 ‘훌륭하고 값진 삶을 사셨습니다.

본받아서 저희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라는 말을 듣기를 원한다면 지금부터 그렇게 살아가야 나중에 자제분들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100세가 되었을 때 내가 들을 말을 생각하면 삶의 방향과 목표를 알 수 있고 주어진 삶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를 성찰하고 정리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순간 죽음이 찾아와도 지금보다 자연스럽게 맞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만약 덤으로 하루가 더 주어진다면, 그 하루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오늘까지가 나에게 주어진 삶의 전부였는데, 내일 하루가 더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너무 소중해서 어찌하지 못하고 껴안고만 계시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으시겠지요. 죽음이 그 큰 입을 벌리고 우리를 기다린다고 해서 두려움과 불안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사과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하십시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보십시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십시오. 지금 하십시오. 그렇게 마무리하고 준비하는 죽음이 행복한 죽음일거라고 생각합니다. 남겨진 모든이들이 감사해하고 행복하게 기억할 수 있는 여유 있는 그런 ‘행복한 죽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