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파 공작원 어머니를 기립니다'…팔순 아들이 충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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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3-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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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노인이 한국전쟁 중 북파 첩보활동을 하다 목숨을 잃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사재를 털어 전적비를 세운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고인의 외아들 윤종상(80) 씨가 바로 그 주인공. 윤 씨가 지난 4월 세운 '오마니 박정숙 열사의 충혼전적비'는 경남 양산시 원동면 서룡리 분다마을 안쪽 토곡산 줄기에 자리잡고 있다. 고인의 전적비는 1990년 윤 씨가 자신의 불효를 빌며 세웠던 무명용사 추모비 및 모자상과 더불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22일 전적비를 찾은 윤 씨는 "조국을 위해 활동하신 어머니의 고혼이 아직도 어느 하늘에 떠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전적비를 만들었다. 이렇게라도 어머니께 불효를 빌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는 역사의 산교육장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 씨에 따르면 황해도 사리원 출신인 고인은 광복 이후 아들 윤 씨를 데리고 월남한 뒤 서울에 정착했다. 고인은 고향에 두고 온 가산을 정리하려고 비밀리에 남북한을 오가던 중 대북첩보기관인 KLO부대의 특수공작 임무를 맡았다.

전쟁이 발발하고 서울이 점령된 가운데서도 첩보활동을 하던 고인은 아들 윤 씨와 함께 북한 정치보위부에 체포됐다. 윤 씨는 구사일생으로 탈출했지만 고인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윤 씨는 "북한 정치보위부에 끌려가서야 어머니가 첩보원 신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당시 어머니를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게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다"고 술회했다.

윤 씨는 50년 넘게 고인의 행적을 수소문한 끝에 2005년 KLO8240부대 전우회의 증언으로 고인의 공적을 확인한 뒤 그해 11월 대전 국립묘지 현충원에서 위패 봉안식을 가졌다. 고인은 행상으로 가장하고 황해도 연백과 벽성, 사리원 등지를 오가면서 북한 인민군의 동태와 북한 정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보원을 안내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