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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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3-1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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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노 선생이 안장되어있는 파리시립묘지 페리 라세즈를 찾았다. 부인인 박인경 여사, 아들 이융세씨와 함께 한 자리였다. 이미 서양인의 생활방식으로 평생을 살아온 분이라 생각되어 한국적 정서와는 많이 다르리라 생각했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묘를 찾아가는 동안 차안에서 더할 나위 없이 자상한 배려로 어머니를 대하는데다 아버지에 대한 진한 회상을 털어놓는 게 아닌가. 부모에 대한 극히 동양적인 살가운 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고인이 평소 좋아했다는 꽃을 들고 묘지 앞에 섰을 때, 이씨는 배낭에서 빗자루와 헝겊 그리고 물뿌리개를 꺼내 놓기 시작하더니 묘지 위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과 먼지를 쓸고 닦은 뒤에 화분에 꽃을 가지런히 놓고 물도 주었다.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살고는 있어도 역시 한국적 정서가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파리 페리 라세즈 시립 묘지는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묻힌 곳으로 유명하다. 음악가 쇼팽을 비롯해 화가 모딜리아니, 작가 오스카 와일드 등이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음악의 우상인 짐 모리스도 묻혀 있다. 부인의 말에 의하면 짐 모리스의 추모식 때는 한달 내내 음악소리가 끊이질 않고, 골목골목 알록달록하게 페인트칠을 한 젊은 청년 추모객들이 전세계에서 모여들어 마치 축제와 같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사회의 풍속도 하나의 문화적 자산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에게 예술가의 죽음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보통의 예술가의 경우, 사후에 묘지가 어디에 있는지 일반인들은 알 수도 없으며 기념관이나 미술관 등이 없다면 그의 예술 정신을 기린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 예술가의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장례문화에 따라 혹은 종교적 관례에 따라 치러지고, 그를 추모할 수 있는 길은 모두 후손의 몫이다. 위대한 예술가의 삶과 죽음은 순전히 개인적 통과의례에만 맡길 일은 아니다. 예술가의 정신적 가치를 유의미한 문화로 사회화하려면 사후에 그가 잠들어 있을 자리조차 친근한 장소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여유와 이해가 필요하다. 예술가의 묘지조차 축제장소로 활용할 수 있는 국민은 문화적으로도 저력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