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왜 ‘원거’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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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3-1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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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한국엔 왜 ‘원거’가 없는가

임춘웅 (본지 객원 논설위원)


‘원거’(溫哥,원오빠)란 중국의 현직총리 원자바오(溫家寶)의 애칭이다. 중국국민들은 그들의 총리를 ‘원오빠’로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만큼 원자바오 총리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우리식으로 하면 국민총리인 셈이다.

총리가 어떻게 해서 ‘오빠’가 됐는지는 우리나라에도 그 경위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지난 4월 서울을 공식 방문해서는 한강시민 공원을 서울시민들과 함께 조깅을 해 관심을 모았는데 한국방문을 계기로 그에 관한 여러 가지 얘기들이 소개 됐었다. 최근엔 1차 총리임기(내년 3월)가 끝나면 사임하겠다는 보도가 있어 또 한번 화제가 됐었다. 이 보도가 나온 직후 중국정부는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해 일단락 됐으나 그는 실제로 총리 일정이 너무 힘들고 또 젊은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평소 해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리더십은 도덕성·능력이 창출

‘원거’는 지난해 1월 춘제를 맞아 산둥성의 한 농촌을 방문했다. 그때 그는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한 네티즌이 총리가 입고 있는 점퍼가 11년전 산둥성를 방문했을 때 입고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을 보고 두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 총리의 점퍼얘기는 순식간에 23만개 사이트로 퍼져 나갔고 중국국민들은 점퍼 하나를 10년 이상 입는 그들의 총리에 열광했다. 지난해 7월에는 수선해서 신는 그의 운동화가 화제가 됐었다. 그의 검소하기 이를 데 없는 사생활은 중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호사가중에는 그가 정치적으로 잘 짜여진 각본에 따른 정치적 쇼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없지 않으나 그것은 지나친 왜곡임을 알 수 있다. ‘원거’는 평소 일상생활에서도, 그가 살아온 일생을 통해서도 그렇게 살아왔음을 여러 자료들이 보여주고 있다.

원거의 리더십을 ‘친민(親民)리더십’이라고 한다. 그는 부총리 시절 무려 2000여회의 민정시찰을 통해 인민들의 고충을 덜어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청빈과 친민만으로 오늘의 자리에 오른 게 아니다. 그는 능력면에서도 저우언라이(周恩來) 이래 가장 출중한 총리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관장하고 있는 경제분야는 그동안 고도성장을 계속해 왔다. 중국이 이룩한 오늘의 경제성장이 원자바오 힘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의 중국 성장에 원자바오의 공로가 적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해 4월 일본을 방문해서는 ‘원자바오식 외교’로 일본을 열광케 했다. 그는 두 나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과거 대신 두 나라가 함께 가야할 미래를 얘기했다. 지난해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때는 기자회견에서 동서의 고전들을 섭렵한 그의 엄청난 독서량에 세계의 기자들이 놀랐다

원자바오의 리더십은 참으로 신선하다. 그런데 한국에는 왜 ‘원거’가 없는 것일까. 우리는 스스로 중국보다 30년은 앞서 있다고 믿고 있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유능한 지도자가 중국에는 있는데 한국에는 없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나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 중 상당수가 부패, 부정과 관련해 낙마했다. 현재도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사람들 중 축재과정과 탈세혐의가 검증 대상이 되고 있다. 오늘의 중국이 투명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는 저우언라이나 원자바오 같은 지도자들이 있어 모범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중국의 희망이다.

덩샤오핑(鄧小平), 저우언라이 같은 사람들은 사후 화장을 해서 조국 산천에 뿌려주도록 해 장례문화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한국의 대권주자들은 줄줄이 선친 묘소를 명당을 찾아 이장하는 후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한결같이 호화롭기 이를 데 없이 꾸며 놓았다. 우리역사에도 우러러 볼만한 선비들이 없었던 게 아니다. 조선조 때도 정부가 인정한 청백리가 260여명에 이르렀고 해방이후 건국초기 어려웠던 시절에도 가인 김병로, 김홍섭 판사같은 고결한 인격자들이 있었다.

가치관의 혼돈이 원인

그런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지금의 한국에는 원자바오같은 국민지도자 한사람도 찾아볼 수 없다. 부끄러운 일이다. 가치관의 혼란 때문일 것이다. 경제성장과정에서 돈만이 말하는 세태 속을 살아오면서 모두가 도덕적 해이와 가치관의 혼돈 속을 헤매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는 언제쯤 원자바오 같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지도자가 나오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