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그리고 80’ 웃을 수만은 없는, 경쾌한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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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4-15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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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연극으로, 다시 뮤지컬로. 뮤지컬 ‘19 그리고 80’은 탭 댄스 리듬처럼 경쾌했다. 그러나 별스럽지 않게 내뱉는 모드 할머니의 한마디 한마디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얼어붙은 한강이 ‘쩡’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듯한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무대 위의 ‘모드’는 웃었지만 그를 향한 객석의 수많은 ‘해롤드’들은 웃을 수만은 없었다.

19세 해롤드는 또래의 젊은 남자들이 자주 갈 만한 PC방이나 댄스클럽 대신 장례식장을 찾는다. 어머니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매일 우스꽝스러운 자살 시도로 시간을 허비하며 산다. 어느날 해롤드는 장례식장에서 유쾌한 할머니 모드를 만난다. 80세 생일을 며칠 앞둔 모드는 행동이 엉뚱하지만 활력이 넘치는 할머니다.

이날부터 친구가 된 두 사람. 모드는 삶에 심드렁한 해롤드에게 인생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차츰 삶에 대해, 사랑에 대해 눈뜨기 시작하는 해롤드. 마침내 80세 모드와 결혼하기로 결심하고 사랑을 고백하지만 모드는 행복한 죽음을 맞는다.

박정자의 노래와 춤을 지켜보는 것은 연극만으로 이 작품을 감상해온 사람들에게 큰 즐거움을 줄 만하다. 박정자는 60대 중반이지만 작품 속 모드처럼 활력이 넘쳤다. 해롤드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객석의 웃음을 자아냈다. 9곡에 달하는 솔로곡도 가사를 음미하기에 좋다. 뮤지컬 신예로 떠오른 이신성도 안정된 연기와 노래를 선보였다.

특히 감초 역할을 한 것은 이건명과 배해선이다. 이건명은 신부, 정신과 여의사, 교통경찰, 군인 등 1인 다역을 순발력 있게 해냈다. 배해선도 해롤드와 맞선을 보는 순진한 아가씨, 여배우 등을 연기하며 극의 재미를 더했다. 뮤지컬로 만들어지면서 이건명과 배해선이 맡은 인물들의 비중이 높아져 막간극처럼 느껴진다. 연극적 호흡법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뮤지컬 ‘19 그리고 80’의 화려한 볼거리가 다소 생소할 것 같기도 하다.

‘19 그리고 80’은 박정자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는 “80세까지 공연하고 싶다”고 공언해왔다. 일생을 무대에 바친 노배우가 자신의 마침표로 일찌감치 점 찍은 작품의 힘은 무엇일까. 작품 곳곳에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삶의 성찰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기 때문 아닐까.

“마치 시대를 앞서가는 모험가처럼 살아야 해.” “난 죽는 건 두렵지 않아, 살아있지 않은 게 두려웠지….” 모드의 말들이 오랫동안 맴돈다.

콜린 히긴스 작, 이충걸 각색, 장두이 연출. 3월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계속된다.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