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집안의 묘지 다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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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4-14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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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문화관광과는 23일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문중이 400여년 동안 마찰을 빚어온 묘지 이장 문제를 지난 2005년 합의함에 따라 경기도문화재위원회와 중앙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묘지 이전안을 가결시켰다고 밝혔다.

경기도와 중앙문화재위원회에 따르면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대종회는 지난 2005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윤관 장군묘(국가 사적 323호) 위쪽에 조성되어 있는 조선시대 영의정 심지원 묘(경기도 기념물 제137호) 등 청송 심씨 종중묘 10여기, 신도비 등을 파평 윤씨 문중에서 제공하는 8천여㎡의 토지로 이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힘에 따라 그동안 이장문제에 대한 심의를 벌여왔다.

고려시대 이후 한국의 대표적 명문가로 상징되는 두 문중의 산송은 16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세기 효종 임금 당시 영의정을 지낸 청송 심씨 문중의 심지원은 그해 부친의 묘를 파평 윤씨 윤관장군의 묘역 바로 위에 조성했다.

1658년 영의정에 오른 심지원은 국가로 부터 이 일대 땅을 하사받아 청송심씨 문중 묘역을 조성하기 시작했고, 1662년 이 곳에 심지원의 묘까지 조성했다.

당시 심지원은 윤관 장군묘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부친을 안장하고 청송 심씨 문중묘역을 조성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원의 묘가 조성된지 꼭 100년 후인 1763년(영조 39년) 파평 윤씨 문중이 실전된 윤관 장군의 묘를 찾는다며 심지원 묘소를 계단위 망주석 아래까지 파헤치자 이에 격분한 심씨 문중은 “파평 윤씨 문중이 윤관 장군 묘를 찾겠다면서 심지원의 묘를 훼손했다”며 윤씨 가문의 처벌을 당시 고양군수에게 요구, 두 집안의 묘지 다툼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간의 산송문제는 당대 두 명문대가의 분쟁으로 확대됐다.

당시 영조 임금의 절충안으로 두 문중의 산소는 현재까지 그 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나, 윤관 장군 묘와 심지원의 묘는 불과 3미터 남짓 떨어져 있고, 윤관 장군 묘역에 2미터 높이의 돌담이 설치돼 심지원 묘의 앞을 가리는 등 두 문중은 2005년까지 돌담 설치, 조망권, 산소 훼손 등의 문제로 분쟁을 벌여 왔었다.

한편 심지원 묘와 종중묘 10여기 등은 현 위치에서 120여㎥ 떨어진 지역으로 내년 3월쯤 발굴기관의 조사를 거쳐 이장이 완료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