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보호해 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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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4-1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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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전쯤인 지난 9월24일, 프랑스의 한 철학자가 시골 자택에서 부인과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있는 주검으로 발견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추모 성명에서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라고 표현한 앙드레 고르(84)와 불치병으로 고통받아온 아내 도린(83)이 그들이었다. 동반자살을 하기 전 그들은 현관문에 경찰에게 알려 달라는 쪽지를 붙였고, 침대 곁 탁자 위에는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화장한 유해를 그들이 가꾸었던 뜰에 뿌려 달라는 세세한 장례방법을 담은 편지를 남겼다.

세인들은 “둘은 삶에서도 연대했지만 죽음에서도 연대했다”고 부러워했다.
이들의 죽음이 비극적인 뉘앙스를 풍기기보다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인 이유는 그들이 생전에 58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 나누었던 사랑 때문이었다. 앙드레 고르는 죽기 1년 전 ‘D에게 보낸 편지’를 출간했는데, 이 편지글이 담긴 책에는 그들이 결혼한 이래 나누었던 사랑이 담담하면서도 뜨겁게 녹아 있다.

그는 아내에게 보내는 노년의 연서를 이렇게 시작했다.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 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는 “우리는 서로 보호해 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입어 이 세상에서 있을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고 술회했다. 아내는 자신들이 “가난했어도 누추하게 살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들에게 사랑과 죽음은 같은 것이었고,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최고의 풍요였다. 왕성한 집필과 사회활동을 하다가 과감하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불치병에 걸린 아내와 시골로 내려와 20여년을 살다가 죽음까지 함께 맞았던 그들의 사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혼율 3위, 갈수록 노년층의 이혼율이 높아지는 한국사회의 세태에서 볼 때 범상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생물학적 속성상 3년 이상 사랑이 지속되기 힘든 ‘과학적’ 이유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또 유사 이래 일부일처제가 제대로 유지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남성들은 축첩이나, 그도 아니면 성매매나 외도 따위로 무늬만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면서 일방적으로 여성에게만 일부종사를 강요해 왔다는 날카로운 분석도 있다. 그러나 여성들마저 이러한 틀에서 일탈해 ‘자유’와 ‘본성’을 추구한다는 통계 수치는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현실이다. 설혹 정상적인 가정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늬만 부부인 경우도 많아서 가족 해체의 위기는 기실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해체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조차 있다.

수많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누구에게나 불변의 사랑에 대한 ‘환상’은 있다. 진실한 사랑이 주는 ‘치유’의 마력과, 그 안에서 느끼는 행복의 순도는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반복돼도 다시 무수히 생산되는 사랑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이유다.  정작 사랑을 추구하면서도 사랑을 하지 못하는 많은 이들의 정서적 ‘불구’는 온갖 사회악의 근원이기도 하다.

적대적 언어와 불신과 혼돈이 난무하는 이즈음, 연말로 접어들어 영하의 기온이 가뜩이나 스산한 가슴을 움츠리게 하는 계절, 앙드레 고르와 도린의 평범한 ‘기적’은 다시 사랑에 대한 ‘환상’을 꿈꾸게 한다. 죽을 때조차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쇼’를 했다는 냉소적인 시각도 있겠지만, 어차피 인생이란, 삶이라는 무대에서 어떤 식으로든 연출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드라마 아닌가. 83세의 앙드레 고르는 자다가 깨어나 82세의 아내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 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