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14세기에 활동한 이집트의 왕(BC 1333~1323 재위).

페이지 정보

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9 16:54

본문

이.gif

9.jpg


1922년에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발굴된 무덤으로 유명하다. '아마르나 혁명'을 이끈 아크나톤 왕이 죽은 뒤 즉위했으며, 그의 유력한 조언자들은 전통 종교와 예술 양식을 되살렸다.

그의 미라를 의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투탕카텐은 바로 전에 이집트 왕을 지낸 스멘크카레의 동생인 것으로 여겨진다. 스멘크카레는 위대한 왕 아크나톤의 사위로, 아크나톤과 공동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텔엘아마르나(아크나톤의 수도인 아크타톤)에서 발굴된 적요서와 그밖의 상황 증거로 미루어볼 때, 투탕카텐은 아크나톤과 스멘크카레가 죽은 뒤 어린 나이에 왕이 된 것 같다. 텔엘아마르나에서 발견된 옥새는 투탕카텐이 즉위한 후 1~2년 동안 이곳에서 살았음을 암시한다. 그는 왕위 계승권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아크나톤의 셋째 딸과 결혼했는데, 이 딸은 아마 왕가에서 살아남은 공주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을 것이다. 즉위할 때 그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고위 관리이자 섭정이며 왕가와 유대를 갖고 있는 아이와, 장군인 호렘헤브가 그의 주요조언자가 되었다.

이들의 지도에 따라 투탕카텐은 오늘날의 카이로 근처에 있는 행정 수도 멤피스로 거처를 옮기고, 테베에 있는 아버지의 궁전을 복구했다. 또한 즉위한 지 늦어도 4년 뒤에는 이름을 투탕카멘으로 바꾸고, 옛날 신들의 신전·조상·특권 및 그들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부활하는 한편 아크나톤의 방침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그는 아몬 신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이처럼 굴복했지만, 아크나톤이 유일신으로 섬긴 태양신 아텐을 금지하거나 박해하지는 않았다. 왕실 포도밭과 군대는 여전히 아텐이라는 이름을 유지했다. 즉위한 지 9년째 되던 해 호렘헤브가 이끄는 이집트군이 이집트의 옛 동맹국인 시리아 북부의 미탄니 왕국을 돕기 위해 시리아로 진격했다. 미탄니 왕국은 히타이트 왕국의 봉신들과 전쟁에 말려들어 있었다. 히타이트 왕이 보낸 증원군이 봉신들을 돕기 위해 서둘러 전쟁터로 달려가고 있을 때 투탕카멘이 18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자식들은 모두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 아이가 그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왕위를 이었다.

투탕카멘이 죽은 지 얼마 후 테베 서부에 있는 그의 무덤(그가 원래 만들어둔 무덤은 아이가 자신의 무덤으로 삼았음)에 2차례에 걸쳐 도굴꾼이 침입했다. 그러나 이들은 무덤에 사소한 손상만 입힌 뒤 곧 체포되었다. 그후 이 무덤은 1922년 영국의 이집트학자 하워드 카터에 의해 발굴될 때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제19왕조 시대에 '아마르나 왕들'(아크나톤·스멘크카레·투탕카멘·아이)이 왕의 명단에서 삭제되고 공공연히 비난을 받으면서 투탕카멘의 무덤이 있는 위치는 잊혀지고, 많지 않은 그의 기념비는 나중에 파라오가 된 호렘헤브에게 대부분 강탈당했다. 제20왕조 시대에 람세스 6세의 무덤이 투탕카멘의 무덤 바로 위에 만들어졌을 때 돌 부스러기가 골짜기 비탈을 따라 흘러내려 젊은 왕의 무덤을 두꺼운 층으로 덮어버렸다. 제20왕조의 일꾼들은 투탕카멘의 무덤에 가까이 갔지만 그 장소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게 분명하다. 이 무덤은 제20왕조말에 대규모로 자행된 약탈을 모면했고, 후대 사람들이 왕들의 계곡을 체계적으로 조사하여 그 위치를 발견할 때까지 그대로 보존되었다.

왕의 미라는 작은 묘실 속에 안치된 3중 관 속에 누워 있었다. 가장 안에 있는 관은 순금으로 만들어졌고, 밖에 있는 2개의 관은 나무틀에 금을 망치로 두드려 박아넣은 것이었다. 왕의 머리에는 찬란한 황금 가면이 씌워져 있었고, 수많은 보석과 부적이 미라 위와 그 미라를 휘감은 싸개 속에 놓여 있었다. 관과 관석은 글을 가득 적은 나무판에 금박을 입힌 4개의 제단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런 글은 사실상 묘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다른 방들은 가구·조상·옷·전차·무기·지팡이와 그밖의 수많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무덤이 없었다면 투탕카멘은 지금과 같은 명성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무덤 덕분에 투탕카멘은 그보다 오래 살았거나 훌륭한 치적을 남긴 어떤 전임자나 후임자보다도 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