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원로의원 법주사 圓坡堂 혜정 대종사 입적

페이지 정보

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9 15:18

본문

전 원로의원 혜정대종사(제5교구본사 법주사 회주)가 22일 낮 12시57분 괴산 각연사 에서 입적했다. 법주사는 23일 산중회의를 소집해 분향소 마련, 영결식 절차와 장례위원을 발표했다.분향소는 속리산 법주사에 마련됐으며 영결식과 다비식은 26일 오전 10시 법주사에서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봉행된다. ( ☎.043-543-3615 )

혜정 대종사는 세수 79세, 법랍 59세로 1933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해, 1953년 금오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67년 경남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했다. 1968년부터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을 거쳐 중앙종회부의장(1972년)을, 1977-1979년 총무원장을 역임한 뒤 원로회의 의원을 엮임 했다. (법랍 59, 세납 79세)

<열반송>

石龜上天 석구상천
泥牛眠 니우면

돌 거북은 하늘로 오르고
진흙 소는 잠들다.

圓坡 識

<혜정 대종사 행장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 원파당 혜정대종사는 종단과 충북 불교의 중심인 법주사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셨고, 도제양성과 재가 불자를 키우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하셨습니다.

1933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하신 스님은 고등학생 시절에 공주 마곡사에서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라는 주련을 읽고 나서 삶에 대한 의문이 가슴을 짓누르게 되자 발심 출가 하셨습니다.

스님은 1953년 수덕사에서 남훈스님을 계사로, 금오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1955년에 조계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하셨습니다. 1957년 불국사 선방을 시작으로 법주사, 해인사, 봉암사 그리고 월출산 상견성암에서 삼년결사를 마치시어 23안거를 성만하셨습니다.

처음 출가하셔서 법주사 강원을 마친 후에도 경전과 어록 읽기를 좋아하셨는데, 어느 날 스승이신 금오스님으로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면 중노릇 힘들다"는 말씀을 듣고 화두 참구에 더 노력을 기울이셨으나, 그렇다고 경전을 아주 멀리하시지는 않았습니다.

60년대 불교정화의 기치가 높게 걸렸을 때 중앙종회의원직을 맡아서 종단 일을 돌보면서도 태국 왓벤랴 사원에서 남방불교를 3년간 수학하셨습니다.

1972년 동국대학교 감사를 시작으로, 1976년 법주사 주지, 1977년 제14대 총무원장직을 맡아서 대한불교조계종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서 스님 특유의 온화한 설득력으로 종단 안정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1992년 대한불교조계종 단일계단 계단위원, 제 5교구 본사 대승보살계 전계대화상을 맡기 전부터 전국 모든 본·말사의 계단에 참석하시어 계율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법주사 회주로써 충북 불교의 위상과 법주사의 전법도량으로서 기틀을 다지시고 종단 법계위원과 법계위원장직을 맡아서 종단의 기강과 위엄을 드러나도록 하셨습니다.

2004년 5월 해인사에서 대종사 법계를 수지하시어 종도들에게 수행의 귀감이 되셨습니다.

스님은 평생을 청빈하게 사시고 모든 이들을 차별 없이 자비로서 맞으셨습니다. 지위 고하나 빈부여부는 당신의 마음에 없으셨습니다.

스님의 방문은 항상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었고, 몸이 좀 불편하실 때조차 방문객을 돌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스님의 몸이 불편하시자 제자들은 괴산 각연사로 모셔서 시봉하였는데 입적하시기 10일전에 맏상좌 지명스님께 열반송을 읊어 주시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도송>

生死去來本來空 (생사거래본래공)
回顧首山碧水碧 (회고수산벽수벽)
千年石虎産麒麟 (천년석호산기린)
莫尋前三三後三 (막심전삼삼후삼)

나고 죽고 오고가는 것이 본래 실체가 없어라
머리를 돌이키니 산도 푸르고 물도 푸르도다!
천년 묵은 돌 범이 기린을 낳으니
달리 전 삼삼 후삼 삼을 찾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