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삶도 휘영청 밝은 저 달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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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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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추석을 코앞에 두고도 예년의 명절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태풍이 휩쓸고 간 들녘엔 미처 덜 여문 벼들이 애타게 누워있고 낙과피해와 일조량 부족으로 과일과 채소는 추석 물가를 천정부지로 올려놓고 있음이다.
시절이 이렇건만 매번 느끼는 명절은 한해 한해가 다르다고 소회하는 시니어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덕담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요즘, 달라진 명절분위기와 또 그 속에서도 변화의 시류에 맞춰 불굴의 지혜를 발휘하는 분당ㆍ용인 6070시니어들이 전하는 추석에 대한 단상들을 모아보았다.

한가위 분위기 사라지는 것 안타까워
뭐니 해도 추석은 우리고유의 전통명절이다. 이런 전통이 조금씩 퇴색해 가는 게 안타깝다. 대부분의 시니어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달라진 세태에 대한 아쉬움이다.
“추원보본(追遠報本)이라고 추석이 되면 먼 곳에 나가 있더라도 집으로 돌아와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고 제를 올리곤 했는데 요즘은 오히려 명절에 여행을 더 많이 가고 가족끼리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점점 약식으로 빨리 해치우고 여행갈 궁리를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지고 있다는 김인자(65ㆍ분당 구미동)씨의 소회다. 김 씨는 전통이라고 무조건 고루하게 여길게 아니라 소중한 미풍양식은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의견엔 박종순(63·성남 태평동)씨도 동의한다.
“옛날엔 추석을 한복입고 맞았는데 요즘은 너무 간소하고 간편 위주로 흘러가죠. 명절인지 그냥 휴일인지 모를 정도예요. 추석 즈음에 달이 스러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송편 빚던 생각이 나는데 지금은 그저 추억 거리죠. 딸만 다섯이라 며느리는 없지만 명절에 경북 봉화의 시댁에 갔다 오는 큰딸이 힘들다고 불평할 때면 오히려 호되게 야단치게 되요. 1년에 많아야 두어 번인데 엄살이냐고요.”
그래도 딸들과 사위 손자들이 모이는 명절이면 엄마 수고했다고 맛있는 음식점 데려가 주는 재미에 그나마 명절이 기대된다는 박 씨다.

추석 명절이 달라진다, 고로 우리도 달라질 테다
그런가 하면 달라진 세태에 맞게 순응하며 적응하는 시니어들도 많아지고 있다.
홍성훈(62ㆍ용인 상현동)씨도 명절음식 준비와 전 부치기에 선수가 된지 이미 오래다.
“아들만 7형제 중 막내입니다. 해마다 큰 형님 댁에 모여 명절을 보내는데 형제들끼리 각자 음식을 분담해서 준비해 가죠. 우리도 음식 만들어 가야해서 전도 부치고 명절 음식 준비는 이제 익숙할 정도예요. 오히려 명절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남자들이 예전보다 하는 일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런가하면 김일식(70·분당 정자동)씨네 며느리들도 명절에 대한 부담이 비교적 적다.
“명절이나 제사에 며느리들이 각자 음식 분담해서 가져와요. 예전엔 종가집 위주로 모여서 했는데 요즘은 가족단위로 명절을 준비 하니 힘들게 할 필요 없잖아요. 딸들도 명절 당일 오후면 오고 아들도 처가에 가고 하니까 서로서로 마음 헤아려 줘야죠. 다만 애들이 싫다는데 아내가 자꾸만 바리바리 음식을 싸주는 것이 조금 안 돼 보여요. 준비하는 것도 힘든데 애들 반기지 않은 음식들 억지로 떠안기지 말았으면 하죠.”
몇 해 전 조상 묘를 근처 납골당으로 모신 김경규(63·용인 보정동)씨도 매장 문화가 바뀌면서 명절도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경우다.
“아버님과 조상님 산소를 수원 납골당으로 옮겼어요. 예전엔 산소에 가서 벌초하고 차례 지내는 게 큰 일이었는데 이제는 납골로 모시니까 간소해 지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땅도 좁고 더 이상 매장 문화를 이어가기도 힘들잖아요. 나도 자식들에게 수목장으로 해달라고 미리 얘기도 해놨고요.”

나이드니 귀찮고 명절도 흥미 없어
그런가하면 명절이 돌아와도 크게 감흥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나이가 드니 모든 게 시들해졌다는 것. 권기안(78·용인 상현동)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시제사도 지내고 집에서도 명절을 준비하는데 쉰 살 까지는 나도 명절만 되면 설레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었다고요. 내가 4대종손인데 늘 북적북적하죠. 며느리들도 바쁘고. 그런데 요즘은 전혀 흥이 없어. 그저 한해가 가는 구나 정도지. 평소에 가족들도 자주보고 명절이라고 크게 달라질 게 없으니까 드는 생각인가보다 해요.”
이런 생각은 김진수(71·분당 금곡동)씨도 마찬가지다.
“자식들이 외국 나가 있으니 명절이라고 썰렁해요. 그저 우리 부부만 단출히 지내는데 어느 해부터는 명절이라고 크게 달라지는 게 없는 거에요. 자식들 생각이 나긴 하지만 평상시 이메일이나 온라인으로 자주 소식 주고 받으니 괜찮고, 오히려 명절에는 길 막히니 여행도 제대로 못하고 식당도 쉬는 곳이 많아 더 번거로워요.”
이선순(67·구미동)씨는 명절 분위기의 침체를 경기가 안 좋은 것에 있다고 전한다.
“실제 경기도 안 좋지만 체감 경기는 더욱 좋지가 않잖아요. 자식들이 명절 준비 하려면 돈 많이 들 텐데 걱정도 되고 시골 가는 거 경비도 만만치 않을 테니 걱정하느라 명절 분이기가 안나죠. 저희도 맏이가 아니라 경기가 괜찮을 땐 명절 긴 연휴 핑계로 해외여행도 가곤 했는데 자제하려고 하죠. 또 집에서 제사를 안모시니 명절 당일엔 만두나 빚고 하니까 크게 명절이라고 달라질 건 없어요. 다만 며느리들 한태 우리 제사 일찍 모시지 않게 건강관리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그런가하면 황해도가 고향인 이경희(67·용인 죽전)씨는 실향민이 느끼는 향수도, 애틋함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형제도 없고 명절에는 고작해야 누님 댁에 다녀오는 정도예요. 성당에 다니니까 명절이라고 달리 흥이 나지는 않죠. 다른 분들은 임진각에도 다녀온다는데 난 아직 한 번도 명절에 임진각 가본적도 없고요. 그저 그래요. 명절분위기 따로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이렇듯 달라지는 추석 문화에 저마다 삶의 방법으로 적응하고 있는 분당·용인 시니어들.
그러나 이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주제는 추석과 명절에 대한 정과 향수다.
없이 살면서도 이웃과 서로 정을 나누고, 양말 한쪽이라도 나누며 고마움을 전했던 정취는 사람 살아가는 미덕이었다는 것.
다만 각박한 세상살이로 젊은 자식들에게 누를 끼칠까 염려하는 시니어들의 마음속엔 세상  살이 고단함을 하루 만은 잊고 달처럼 환하게 웃었으면 한다는 것이 공통된 소망이었다.

#분당ㆍ용인 6070 시니어들이 전하는 ‘내가 받은 추석 선물 best’

선물 중에서 과일과 채소 등 먹을거리는 누구나 부담 없고 또 같이 나눠먹을 수록 정이 생기는 선물이다. 직접 재배한 버섯과 토산물은 향도 좋고, 땀과 정성이 담긴 선물이라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향기로운 선물이다.
또 사돈이 담궈 주는 김치와 매실 액기스는 그야말로 보물과도 같은 선물, 가을에 곶감 말려 보내주는 것도 횡재한 것 같은 기분이다.

선물 중에서도 가장 활용가치가 높은 게 바로 돈이다. 이것저것 불필요한 것 말고 현금이 가장 좋다. 정성이 없는 것 아니냐는 걱정은 안해도 된다. 그저 나이 들수록 돈이 가장 좋다.

건강관련 제품이나 먹을거리들이 많이 들어오지만 받을 때마다 기분 좋다.
특히 홍삼은 누구나 먹을 수 있고 몸에도 좋으니 어떤 선물보다 자주 들어오고 또 자주 선물로 하게 된다. 원기회복에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이 같이 먹을 수 있으니 더 좋은 것 같다.

명절 앞두고 갈비세트가 들어오면 왠지 한층 명절 분위기가 고조되는 것 같다. 지금은 고기가 흔하긴 하지만 갈비가 들어와야 비로소 흥이 난다. 특히 가족들이 모여 함께 갈비를 먹을 수 있어서 좋고, 먹는 재미야 말로 명절의 가장 큰 기쁨인 것 같다. 명절과 갈비, 추억 과도 같은 힘을 준다.

즐겨가는 백화점의 상품권이나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 여행권 등 평소 기호와 선호도를 잘 알고 골라 준 선물엔 특히 정이 간다.
사과를 유달리 좋아하는 것 알고는 해마다 보내주는 지인이 고맙고, 취향이 비슷한 사돈이 본인 것 장만하면서 하나 더 장만해 보내주는 옷은 고맙고 더 각별하다. 자식들이 여러 해 준비해 만들어 준 해외여행권도 잊을 수 없는 추석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