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이선제 묘지, 보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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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8-05-0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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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는 ‘필문로’가 있다. 조선대부터 광주교대까지의 앞길 팔차선도로를 부르는 명칭이다.

지난 1988년 ‘필문로’라는 명칭으로 지정된 이 도로는 필문이선제(李先齊·1390∼1453)의 학덕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필문로는 정충신 장군을 기리는 금남로와 김덕령 장군을 기리는 충장로와 더불어 광주의 중요한 도로다.

조선 전기 호남을 대표하는 인물인 이선제는 세종대 집현전 학사를 지냈다. 본관이 광주(光州, 광산)인 이선제는 1419년(세종 1) 문과에 급제해 집현전 부교리, 강원도 관찰사, 예문관 제학(종2품) 등을 지냈다.

‘고려사’의 내용을 수정하고 ‘태종실록’을 편찬하는 데 참여했으며 병조참의와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다. 사후에는 예문관 제학에 추증됐다.

이선제의 묘지(墓誌·망자의 행적을 적어 무덤에 묻은 돌이나 도판)가 보물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이 24일 공개한 보물 지정 예고 유물인 이선제 묘지는 지난해 9월 일본 소장자가 기증한 것으로, 이선제가 세상을 떠난 이후 후손들이 그의 생애를 적어 무덤에 묻은 기록물이다.

이 묘지는 1998년 6월 일본으로 밀반출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일본인 소장가(유족 도도로키 구니에 여사)로부터 지난해 9월 기증받았다. 당시 도도로키 구니에 여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기증식에서 “이선제 묘지는 남편이 가장 사랑하던 고미술품 중 하나였다. 남편은 기증요청을 받고 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는 슬픔과 묘지를 기다리는 이선제 자손의 마음을 떠올리며 고민했다”며 “이선제 묘지가 한일 우호의 끈으로 남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실에서 이선제 묘지와 관련해 특별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이 묘지는 높이 28.7㎝, 장폭 25.4㎝ 크기의 유물로, 조선 단종 2년(1454)에 상감 기법으로 만들어진 분청사기다. 묘지를 만드는 데 쓴 태토(胎土)와 유약의 색은 15세기 중반 제작 분청사기의 특징을 반영한다. 명확한 제작연대, 위패(位牌) 형태의 기형이 희소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광주에 있는 무덤에서 알 수 없는 시기에 도굴됐다가 1998년 6월 김포공항을 거쳐 일본으로 밀반출됐다. 묘지에 이선제의 삶과 가족에 대해 말해주는 명문(銘文) 248자가 새겨져 있다.

무엇보다 15세기 재질, 장식, 형태 등에서 조선 초기 묘지석 제작의 과도기적 경향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선제 묘지는 올해 3월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광주에서 도굴돼 반출된 유물이기 때문에 광주로 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장제근 국립광주박물관학예사는 “현재 이 묘지는 박물관 유물로 등록이 된 상태고 오는 9월에 전시가 될 예정”이라며 “9월 전시는 이선제 묘지를 비롯 지역에서 기증받은 4기의 묘지도 함께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지난 3월 이선제 문중에서 찾아와 전시와 관련한 의견을 나눴다. 9월 전시회 때 문중에서 유물을 복제해 다시 이선제 무덤에 넣기로 잠정적으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