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피아트 회장의 장례식이 던진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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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5-03-1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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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개인의 삶이 역사가 된다. 비단 시대를 호령한 왕의 경우만 그런 건 아니다. 우리 시대에는 기업가의 삶 역시 전통 시대의 왕에 못지않은 역사의 무게를 지닌다. 실제로 2003년 초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 피아트의 잔니 아넬리 회장이 사망했을 때 언론들은 일제히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왕이 서거했다!" 아넬리는 왕이 없는 이탈리아의 마지막 왕이었다. 아넬리 가문은 그의 할아버지 조반니가 1899년 토리노에서 피아트를 창업한 이래 이탈리아의 관록 있는 '산업 왕조'로 군림했다. 이탈리아는 피아트로 상징됐고, 피아트는 잔니 아넬리로 대표됐다. 이탈리아가 잔니 아넬리로 인격화된 셈이다.

잔니 아넬리의 장례식 날 하루에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약 10만명의 조문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그리고 조문객 중 많은 수가 노동자들이 입는 푸른색 작업복 차림이었다고 한다. 조문객의 정확한 수를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아무튼 엄청난 추도의 물결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잔니 아넬리는 국민에게 널리 사랑받은 기업가였던 것이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하나의 해석은 그의 카리스마적 개성이나 기업가 역량을 부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경력과 라이프 스타일은 범상치 않았다. 할아버지는 가업을 물려줄 외아들 에도아르도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장손인 잔니에게 모든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잔니는 너무 어리고 혈기왕성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기갑부대 장교로서 북아프리카 전선과 러시아 전선에 참전하기도 했다. 종전 직후 할아버지가 사망한 뒤 그는 피아트의 경영을 유능한 경영자 비토리오 발레타에게 맡긴 채 리비에라 해안에서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삶을 살았다. 그는 이탈리아인답게 '패셔니스타'로서의 명성도 높았다. 재킷 소매를 바짝 접어 올리고 양복 정장에 패딩 점퍼를 걸치며 와이셔츠 소매에 시계를 차는 등의 패션이 잔니가 유행시킨 스타일이었다.

카리스마적 개성은 기업가 역량으로도 발현됐다. 발레타에게서 바통을 이어받은 잔니는 과감한 경영으로 피아트를 세계 3위 자동차 기업으로 키웠다. 그는 숙원이던 알짜배기 스포츠카 제조사 알파 로메오의 인수에 성공했고, 낙후한 남부 농촌에 거대한 초현대식 멜피 공장을 건립했다. 그런가 하면 항상 세계 유명 인사들과 친분을 과시하며 세계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와 동시에 토리노와 피에몬테의 지역 전통과 문화를 강조하며 직원들과 소비자들에게 특유의 기업 정체성을 불어넣었다. 글로벌 기업 피아트는 철저하게 지역에 뿌리를 둔 기업이었다. 요즘 말로 글로벌과 로컬을 합친 글로컬(glocal) 기업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잔니의 개성과 역량만으로 그에 대한 엄청난 추모의 물결을 해석하기는 힘들다. 일부 관찰자는 다른 해석을 지지한다. 그의 죽음은 한 기업가의 죽음을 넘어 한 시대의 죽음을 상징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문객들의 인터뷰는 잔니 아넬리가 지난 시대의 숭고한 가치를 증언하는 아이콘이었음을 입증한다. 그는 많은 인터뷰에서 노동의 가치를 믿었던 '위대한 사람'이자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한 '우리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었다. 이런 칭송들은 틀림없이 그가 근면한 노동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고 나라에 봉사한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던 것으로 기억하는 조문객들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 같다.

이를 뒤집어서 말하면 조문객들은 지난 황금시대에 대한 향수를 통해 회색시대인 현재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한 연구자에 따르면 조문객들의 실망감은 장례식장에 늦게 도착한 새로운 스타일의 기업가이자 정치인 베를루스코니에게 조문객들이 야유를 보낸 사실에서도 드러난다고 한다. 요컨대 추모객들은 잔니 아넬리라는 위대한 기업가의 삶을 애도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삶을 애도했고, 과거에 대한 애도를 통해 현재에 대한 어떤 비판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렇게 이탈리아에서 한 시대가 저물고 또 다른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장문석 영남대 역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