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부터 장례까지..조선 왕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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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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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은 신하들에게 시를 짓게 하고는 그 시로 신하의 복심을 살핀 뒤 벼슬을 주거나 빼앗거나 귀양을 보내기도 했다.

'비명에 살해되다', '참소로 인해 친한 이가 원수가 된다' 등의 제목으로 시를 짓게 해 자신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신하의 마음을 떠본 것이다.

정변을 통해 왕위에 오른 태종과 세조는 정치적 운명을 함께한 공신과 더불어 시를 지으면서 신하들을 결집했다.

조선시대 임금이 신하와 시를 주고받는 일은 정서적인 소통을 이뤄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고도의 통치술이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지난해 진행한 시민강좌의 내용을 엮은 '조선 국왕의 일생'(글항아리 펴냄)이 최근 출간됐다.

왕자의 출생에서부터 교육, 왕비 간택과 혼례, 국정 운영, 거주와 통치 공간인 궁궐, 음식, 궐밖 행차, 연회, 사망과 장례까지 조선시대 왕에 대한 모든 것을 12편의 글로 묶었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임금이 시를 짓는 뜻'이라는 글에서 조선시대 임금들이 통치를 위해 시를 활용한 사례를 소개했다.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왕은 어떻게 교육을 받았을까'에서 조선의 국왕은 "왕자로 태어나 왕세자로 책봉되고 왕위에 오르기까지뿐만 아니라 왕위에 오른 후에도 경연(經筵)이라는 교육이 계속됐다"면서 "유학의 가르침에 따르면 모든 군주는 성인(聖人)이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했으므로, 국왕은 학문이 뛰어난 신하를 스승으로 삼아 성인의 도를 익혀야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왕세자는 매일 전날 배운 것을 확인하는 일종의 쪽지시험을 봤고 매월 두 차례 오늘날의 중간고사에 해당하는 시험을 치렀다. 왕세자가 경전의 내용을 암송하고 뜻풀이를 하면 이를 지켜본 스승이 우수하다는 의미의 통(通), 조금 부족하지만 통한다는 략(略), 부족하다는 조(粗), 낙제를 의미하는 불(不)이란 네 가지 목패 중 하나를 들어 보였다.

'왕은 평소 어떻게 일했는가'를 쓴 정호훈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역대 국왕 가운데 누구보다도 바쁘게 국정을 챙기며 업무를 진행한 인물은 정조"라고 말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정조의 일과는 오전 8시에 공식적으로 시작돼 오후 9시가 넘어서야 끝날 정도로 바빴다. 신하들이 군주는 모든 정무를 직접 살피지 않고 중요한 것만 챙겨야 한다고 할 정도로 정조는 쉬지 않고 국정을 꼼꼼히 살폈다.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왕의 까다로운 입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에서 맛과 치료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려던 조선 왕실의 식치(食治) 음식을 다뤘다.

왕실의 대표적인 식치 음식은 죽이었으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쌀을 갈아 우유를 넣고 끓여낸 타락죽이었다.

김지영 서울대 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왕의 행차에 대한 글에서 왕위에 힘겹게 오른 영조가 정당성을 찾기 위해 종묘나 왕릉뿐 아니라 선대의 자취가 어린 수많은 장소를 발굴하고 직접 행차했다고 말했다.

영조는 행차 길에 어가를 멈춰 백성의 생생한 고충을 들었고 백성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날이 궂은 때에도 가마의 문을 언제나 활짝 열어젖혔다고 한다.

김기덕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너무나 정치적인 사건, 왕의 죽음'에서 왕의 장례와 왕릉 조성 방식을 묘사하면서 왕릉 입지 선정에도 불꽃튀는 정치사적 논쟁이 개입했다고 설명했다.

288쪽. 1만9천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