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묘지에 눕게 되면 누가 나를 일으키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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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9-06-1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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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짧은 머리 있는 것 다행이요                                   
손에서 책 놓을 이 일을 어찌 견디랴
묘지에 눕게 되어서 영원히 잠자리라.                                   
尙幸頭邊存短髮 那堪手裏釋長篇
상행두변존단발 나감수리석장편
一臥荒原誰起我 百千萬歲可長眠
일와황원수기아 백천만세가장면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있었다. 무슨 이유로 어떻게 유명을 달리했던가를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죽는 방법은 달랐을지라도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마음을 같았다. 매천은 절명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절명시 4수와 절명자만시 1수를 남겼다. 뿐만 아니라 민충정공을 비롯한 우국지사를 기리는 시도 남겼던 선현이었다. ‘아직 머리에 짧은 머리털이 있는 것만도 다행인데, 손에서 책을 놔야 할 이 일을 어찌 견디랴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한 번 묘지에 눕게 되면 누가 나를 일으키겠나’(絶命自輓詩)로 제목을 붙여 본 율()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가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으로 구한말의 절명시 한 편을 남기고 자결한 우국지사다. 그는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을 학문적으로 흠모했다. ‘경세치용’(經世致用)이란 연암 학문이 당대까지 이어지지 못함을 늘 아쉬워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아직 머리에 짧은 머리털이 있는 것만도 다행인데 / 손에서 책을 놔야할 이 일을 어찌 견디랴 // 한 번 묘지에 눕게 되면 누가 나를 일으키겠나 / 백년 천년 만년 길이 잠자리라]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목숨을 끊으면서 자신의 만사시를 쓰다2]로 번역된다. 시인은 1910910일 절구 4수로된 절명시(絶命詩) 한편을 남기고 자결했다. 그런가 하면 절명을 결심하기 전 자신의 죽고 난 후에 남겨질 만사(輓詞)까지 써뒀다. 전구에는 [한 번 인간 세상을 사절하고 홀가분하게 가니 / 때로는 죽으려 했는데 이제 비로소 신선 길 오르네 // 지난 일을 생각하니 모두가 꿈인데 / 내세에 있고 없음이 무슨 인연인가]라고 했다.
 
시인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만도 다행인데 책을 놓아야 할 일을 걱정한다. 아직까지 머리에 짧은 머리털이 있는 것만도 다행인데, 손에서 책을 놔야 할 이 일을 어찌 견딜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죽음을 결심한 마지막 순간까지 책에 대한 미련을 묶어두지 못했다.
 
화자는 이제 때가 임박했음을 시상이란 끈에 꽁꽁 동여매는 합리화와 사후를 생각한다. 내 한 번 묘지에 눕게 되면 누가 나를 일으키겠는가를 생각하면서 [백년 천년 만년 길이 잠자리라]고 했다. 쉽지 않는 결심이고 고뇌에 찬 비장함이다. 사욕이든가 명예든가 아니면 의였던가는 후세의 사가들에게 맡기려는 의연함이 보인다.
 
장희구 박사/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