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구 망우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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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9-03-0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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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랑구 망우리공원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한용운, 민족사학자 문일평, 독립운동가 오세창, 종두학자 지석영, 아동문학가 방정환,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인사들의 산소가 모여 있다. 이렇게 많은 위인이 함께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다.


망우리공원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3년 일제는 전쟁 준비와 택지 개발을 위해 이태원 공동묘지를 옮기려 이곳 망우리에 묘지를 만들었다. 1973년 폐장되기까지, 일반 서민의 묘지였던 망우리공원에는 가난했던 독립운동가, 문학예술인 들이 잠들었다.


삼일절을 앞두고 며칠 전 다시 찾은 망우리공원은 차갑고 앙상한 나뭇가지와 바싹 마른 풀숲이 선인들이 온몸으로 헤쳐간 저항과 수난의 민족사처럼 우거져 있다. 주차장과 관리사무소를 지나 올라가다 보면 5.2㎞ 거리엔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사색의 길’ 출발점이 나온다.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 어느 쪽을 택해 걷더라도 처음과 끝,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가 모두 하나로 연결되는 듯 원점에서 다시 만난다.


다소 완만한 오른쪽 길을 따라 걸으면 박인환의 연보비와 처음 만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와 숙녀’의 한 구절이 낡은 잡지의 표지를 닮은 서울의 시가지를 배경으로 박혀 있다.


사색의 길 주변 오솔길 사이로 시대의 어둠을 촛불처럼 밝힌 분들의 산소가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다. 120여m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천재 화가 이중섭의 산소가 나온다. 살아생전 훤칠했던 모습처럼 멋진 소나무 한 그루와 평생을 그리워했던 두 아이의 모습이 새겨진 조각 묘비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경기도 쪽 길 주변으로는 멀리 한강을 굽어보며 애국지사들의 산소가 열 지어 있다. “한민족이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가진 본성으로써, 이 같은 본성은 남이 꺾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스스로 자기 민족의 자존성을 억제하려 하여도 되지 않는 것이다.” 한용운의 연보비 앞에 서니 그 꼿꼿함과 강직함에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의 묘비에는 어린이 마음은 천사와 같다는 뜻의 ‘童心如仙’(동심여선)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어린이, 어린이날,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만들고 일제강점기 민족의 미래는 어린이에게 있다며 어린이를 위해 살다 간 삶의 흔적을 여기서도 만날 수 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길 끝자락,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찾아가기 쉽지 않은 비탈진 곳에 이태원 합장비가 있다. 옆에 유관순 열사 분묘(무덤) 합장 표지비가 들어서 있다. 여기에 꽃다운 나이에 순국한 유 열사의 유해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사색의 길을 도는 내내 말 없는 산소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격동의 시대에 지난했던 그들의 삶과 꿈과 역사. 떠난 뒤 초라한 무덤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훌륭했던 삶과 정신은 그곳에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