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3 11:09

본문

박철.jpg
3-40년 전만해도 5일장은 만남의 광장이었다. 장날만 되면 인근 각처에서 장(場)구경을 나왔다. 심지어 2-30리(8-12km) 길도 마다하고 새벽부터 장터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팔 물건이나 살 물건이 없는 사람도 장날이면 모두 장 구경을 나왔다. 떨어진 고무신이 장날 되면 신 때우는 사람을 만나 새 고무신으로 바뀌고 구멍 난 냄비도 새롭게 변했다. 뻥튀기 장수에게 보리 한 됫박 주면 한말이 넘는 튀밥으로 바뀌기도 했다. 어쩔 땐 흰 쌀을 몇 줌 넣으면 진수성찬의 간식거리가 생겼다.

그 뻥튀기 한 자루를 메고 동네로 들어오면 동네잔치가 벌어진다. 한 그릇의 튀밥이 모든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그 웃음이 사랑으로 바뀌었다. 장날은 온 동네의 소문이 모이는 곳이었고 만날 사람들을 만나는 축제의 날이었다.

돈 없는 옆집 노인은 안면 있는 이웃 동네 친구를 만나면 막걸리 한 사발에 배가 부르고 등 넘어 반편이도 동네 사람들 따라 나서면 국수 한 그릇 얻어먹고 배부른 날이었다. 지독한 곰보네 팥죽가게는 인심이 절로 넘쳐나고 대장장이 박가는 하루 종일 두 아들을 데리고 풀무질을 한다. 인심 좋은 박가는 꼬부랑 할머니가 가지고 온 닳고 닳은 호미 자루도 그냥 박아 주고 과부된 갯가 김씨 며느리 한풀이 도구인 굴 따는 쪼시게 닳은 쇠 부리도 그냥 갈아 주었다. 그런데 그 대장장이는 해마다 돈을 모아 땅을 샀다. 십 원, 이십 원짜리 문방구 사장이 몇 천만 원, 몇 십억 오다 받는 기업 사장이 부럽지 않는 것은 사람들을 통하여 얻는 사랑과 순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근 각처 정보의 집결지였던 장날, 그 축제의 기억들이 점점 사라져 간다.

대장장이 박가가 죽었다. 그의 장사(葬事)기간은 온 동네 잔칫날이었다. ‘내 죽거든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돼지 고깃살 숭숭 썰어 듬뿍 넣고 흰쌀밥 한 가득 담아 주어라. 날 찾아오던 사람들이 있어 부자가 되었으니 원 없이 먹여 주어라’ 대장장이 아버지의 엄명 같은 유언 소리에 아들 둘은 돼지 3마리를 잡았다. 대장장이 장사판은 온 동네 축제판이 되었고 사람들은 포식을 했다. 설움과 웃음과 나눔과 베풂과 해학이 가득하던 낭만의 장사판은 사라져 버렸다. 상부상조의 아름다운 미덕은 어디로 가버리고 부조금, 조의금 받아 장사 치르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주검이 상품이 되어 쟁탈전이 벌어진다. 상조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사업꺼리가 되고 주검이 장사 수단으로 바뀌었다. 한 술 더 떠 사람을 살려야 할 병원이 장례식장을 만들어 돈벌이 창구로 쓴다. 더 가관인 것은 어느 상조회사, 어느 장례식장은 장례용품을 중국산으로 쓰면서 국내산 값을 받는다니 참으로 귀가 막힐 노릇이다. 100원짜리 사다가 1000원을 받으면 1000% 장사를 하는 건가? 차라리 국내산으로 쓰고 국내산이라 말하면서 제값 받고 정직하게 장사하면 어떨까? 그 덕에 장례용품 만드는 국내업체는 일자리라도 늘릴 수 있지 않을까? 주검을 가지고 터무니없는 장삿속으로 접근한다면 매우 잘못된 것이다.

인간은 존엄하다. 존엄하기에 정직해야 하고 존엄하기에 잘못된 것은 수정하고 개혁해 가는 것이다. 인간이기에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고 살아있는 이 땅의 사람들은 그 주검을 존엄하게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제는 한국의 상장례(상조장례)판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30년이 되면 한 세대가 바뀐다고 믿는다. 30년이 지나면 대동보인 족보도 다시 만들고 인간들의 생각도 새롭게 변한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필연적인 것도 있고 우연적인 것도 있다.

사람들은 필연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이 만나는 시점을 30년으로 본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장례식장과 상조회사가 새롭게 변화될 시기가 되었다. 장례식장과 상조회사가 도입된 지 30년이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상장례판이 정직으로 새 옷을 가라 입지 않으면 외부적인 요인들로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사업은 정직해야 할 수 있다. 정직하지 않으면 망하든지, 쪽박을 차든지 둘 중 하나이다. 거품이 많다면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부메랑을 맞게 될 것이다.  

박철호 (시인. 한국 CSF 발전 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