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에서 임종환자 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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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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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부산대 최청자강사
우수를 넘긴 요즈음, 봉사를 하러 가는 길에 만나는 바람은 이미 봄기운이 물씬 묻어나고 있다. 햇빛을 따라 걸으면서 병원에서 맞는 삶과 죽음을 생각해 보곤 한다. 우리는 매일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죽음의 나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 전 은행에 웰다잉연구회 통장을 만들러 갔을 때의 일이다.  부지점장이 옆에 서 있다가 ‘웰다잉이 뭡니까?’하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웰다잉에 대해 설명을 해 주면서 죽음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었더니 ‘섬뜩하고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차 한잔하면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죽음준비라는 말도 낯설거니와 죽음도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인줄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나이가 쉰이 넘은 지금 더러 상가에 조문을 가기도 하지만 죽음은 영 실감이 나지 않는 남의 일 같다고 한다.

호스피스 봉사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위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을 때가 많다. 환자의 가족도 정작 자신이 환자가 아니어서 그런지 죽음은 아주 먼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임종의 징후를 보이고 있는 환자 앞에서도 죽음준비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혹여 죽음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이라도 할라치면 아직은 죽음의 때가 멀었다고 손사래를 친다. 죽음을 즐겨 맞을 수 있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애써 외면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죽어가는 사람이 느끼는 두려움은 고통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불쾌한 경험에 대한 두려움, 가족과 사회에 짐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삶의 두려움에서 비롯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인생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두려움, 개인적인 소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 등이 있다. 살아서 느끼지 못하던 많은 경험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게 되니 불안과 두려움이 자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내가 만난 환자 중에서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현실을 토로하는 경우가 있었다.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다른 어떤 두려움보다는 남겨지는 가족들이 더 걱정이 되어서 혼자 울면서 가슴 아파하였다.

이 가장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위로보다는 유족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면 죽음이 목전에서 자신을 위협해도 마음 편히 죽을 수 없는 가장의 비애가 지금 우리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가장에게 ‘죽음준비교육과 삶’ 책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준비 이야기를 꺼냈다. 그 분은 자신의 죽음이 두렵지는 않다고 하면서 아직 40대이고 부인과 자녀들이 있는데, 자녀가  대학이라도 마치고 나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적을 때 죽고 싶다고 하였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어서 나는 얼른 동의를 해 주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임종환자를 돌보는 방법을 소개해 본다. 이것은 돌보는 전문가가 따로 하는 것이 아니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먼저 환자와 함께 있어주기이다. 임종에 가까운 말기 환자 중 과반수이상이 버림받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한다. 실제로 병실에 자주 오지 않는 가족도 있다. 간병인을 쓰더라도 자주 들러서 보살펴야 한다. 가족 중 어린이가 있다면 병문안은 물론 임종 후 장례식에도 참여하게 하여서 사별의 현실을 수용하고 적응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죽어가는 사람 옆에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돌봄이다. 이것은 죽어가는 환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며 사별 후 유족이 사별슬픔을 극복하고 현실복귀를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환자의 자율성 존중해 주기이다.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데 필수이기 때문이다.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환자의 개인적인 일을 결정해 주어야 한다고 습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주의를 해야 한다. 환자는 혼돈, 자기 회의, 불확실성 및 일반적인 무력감들을 느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동적인 태도가 되어 모든 결정권을 자기가 돌보는 사람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흔히 있기에 더욱 자율성을 존중해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이다. 퀴블러 로스의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와 알폰스 데켄의 희망과 기대의 단계를 경험하는 환자를 옆에서 격려해 주어야 한다. 아울러 기쁜 마음 자세로 죽음을 너머의 세계를 생각하게 돕는다. 임종환자가 죽음준비를 함으로써 환자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마지막까지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네 번째는 죽음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죽음을 앞 둔 환자들이 던지는 다음과 같은 물음이야말로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질문 ‘인생과 사랑의 의미는 무엇이고, 시간의 중요성, 영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들이 사회에 던지는 이 물음을 통해 살아있는 우리가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환자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살아있는 사람들이 다시금 모든 것을 새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변화시켜 주는 것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의 순간을 지킨 경험은 어떤 것보다도 인생에 대해서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다섯 번째는 암환자들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가족이 말해주지 않아도 환자는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가족에게 부담이 될까봐서 모른척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암환자에게 마지막 남은 시간을 알려 주어야 하는 이유는 말을 해 줌으로 해서  남은 시간들을 소중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진실을 말해 주는 것은 의사와 환자, 간호사와 환자, 혹은 가족과 환자간의 진실한 의사소통을 함을 말하고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섯 번째는 환자들이 존엄하게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환자를 돌보는 것은 죽는 과정 자체를 불합리하게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윤리 문제가 야기되었다. 인공 심장 박동기 또는 인공호흡기 같은 것을 이용하여 식물인간이 된 사람들이 목숨을 인위적으로 수개월 혹은 수년까지 연장하고 있는 현실이 과연 바람직할까라는 질문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일곱 번째 환자들이 자신의 삶을 검토하여 갈등을 해결하고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말기환자는 과거의 삶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나 갈등 때문에 인간관계, 특히 가족 관계나 개인적인 존엄성의 상실로 오는 부조화로 감정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  간호사, 상담사, 그리고 성직자등은 환자들에게 자서전과 같은 글을 쓰거나 녹음기를 이용하거나, 단순하게 과거에 대해 말하거나, 사진을 통하여 자신의 과거를 재평가하고 되돌아보게 함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호스피스 현장에서 만나는 환자와 가족들은 힘겨운 날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에게 상실의 현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알려 주어야 한다. 가는 자와 남는 자 모두에게 사별의 현실을 인정하고 임종환자를 잘 돌보아 줌으로써 사별 후 유족의 마음에 응어리가 남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다음 호에는 유족의 사별슬픔 치유에 대해서 나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