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그 오래된 새 길을 가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3 12:59

본문

이철.jpg

- 喪禮를 論하다 (2) -

지난 시간부터 다음 시간까지 상례의 첫 단계인 초종(初終)에 대해 살펴 볼 것이다. 전통적 유교 죽음의례의 첫 번째 단계인 초종의례의 전체적인 순서를 다시 살펴보면,  초종(初終) ⇛ 질병천거정침(疾病遷居正寢) ⇛ 폐상침지(廢牀寢地) ⇛ 유언(遺言)  ⇛ 속굉(屬紘) ⇛ 복(復)·초혼(招魂) ⇛ 천시(遷屍)·설치철족(楔齒綴足)·수시(收屍) ⇛ 사자상(使者床) 차리기 ⇛ 역할분담(役割分擔 : 立喪主, 主婦, 護喪, 司書, 司貨) ⇛ 내역복불식(乃易服不食) ⇛ 설전(設奠)·시사전(始死奠) ⇛ 치관(治棺) ⇛ 가유상당고(家有喪當告) ⇛ 부고어친척료우(訃告於親戚僚友) ⇛ 발상(發喪)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중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수시(收屍)라고도 하는 천시(遷屍)·설치철족(楔齒綴足)의 절차와 유교의례는 아니지만 민속에서 진행하였던 사자상(使者床)차리기, 그리고 상례의 역할(役割을 분담(分擔)하여 나누어 각자의 임무를 설명하는 순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⑦ 천시(遷屍)·설치철족(楔齒綴足)·수시(收屍)의 절차에 대해 『주자가례(朱子家禮)』에는 ‘襲 乃說奠’의 주(註)에 ‘유씨가 말하기를 「사상례(士喪禮)」에, 복(復)한 자(者가 내려오면 설치(楔齒)와 철족(綴足)을 하고 포와 육장과 술을 시신(屍身)의 동쪽에 올린다.’고 하였다. 복(復)을 마치고 나면, 시신을 옮겨 시상(尸牀)에 눕히고, 낙명(落命)할 때 마지막 힘에 의해 몸의 흐트러짐을 바로 잡기위해 실시하는 것이다. 예서(禮書)에서는 이를 ‘설치철족(楔齒綴足)’이라고 하고 있으나, 죽은 자의 회생을 포기한 상태에서 죽은 자의 몸을 주검으로 다루는 첫 절차로 보통은 이를 ‘수시(收屍)’라고 한다. 이때, 남자인 경우에는 왼손이 위로, 여자인 경우에는 오른 손이 위로 가도록 하여 일반적인 공수(拱手)의 법을 적용하는 것이 올바른 예법이다.

⑧ 사자상(使者床)차리기는 유교적 의례는 아니이나, 민간에서 가장 많이 실시 된 대표적 의례절차로 포함하였다. 죽음이라는 현상을 혼(魂)과 백(魄)의 분리(分離)로 이해하여, 육신(肉身)으로부터 분리된 영혼(靈魂)을 저승사자가 와서 데려간다고 믿고, 저세상으로 데려가기위해 온 저승사자를 대접하기 위해 상(牀)을 차리는 것을 말한다. 현실적으로 죽음은 숨을 거두는 것으로 확인되지만, 관념적으로는 영혼(靈魂)이 몸을 떠나는 절차를 통해 죽음을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혼(靈魂)은 자의적(自意的)으로 육신을 떠난 것이 아니고 저승사자가 와서 강제로 데려간다고 믿기 때문에 속굉(屬纊)이나 고복(皐復)이라는 의식(儀式)을 행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죽음에 대한 인식 때문일 것이다. 민속에서 행하였던 이런 습속이 가지는 의미를 분석하여 보면, 저승에 대한 관념에 있어서 그 성격이 계세적이고, 타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관념적으로 그려낸 상황을 살펴보면, 사자상에 차린 밥, 신, 돈 등은 이승과 평행선상에 존재하고, 식사를 하며, 이승의 돈을 사용하는 세계로 관념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음식의 맛을 느끼기 때문에 짜고 매운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목말라할 것이라는 의식이 존재한 것은 이승과 저승의 관념에서 단지 옷만 바꾸어 입는다는 관념적 표현이 가능해지는 것으로 만가(輓歌)에서도 대문 밖이 저승이라는 표현 역시 이와 같은 의미에서 전승되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 『예서(禮書)』에는 이러한 사자상에 관한 기록은 없어, 사자상을 미신적인 요소가 내포된 것으로 인식하여 놓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최근까지 사자장의 관습이 전승되는 것은 사후에 영혼(靈魂)과 육신으로 분리되고, 죽음을 통제하고 관장하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저승에 있다는 이원적인 내세관(來世觀)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또 성복을 하면 사자밥 등은 엎어놓는데 이것은 저승사자가 영혼(靈魂)을 거두어 갔다는 의미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⑨ 역할분담(役割分擔)의 절차로 상주를 세우는 立喪主, 主婦, 護喪, 司書, 司貨 등의 절차를 말한다.

 ⑴ 입상주(立喪主)는 상주를 세우는 절차를 의미한다. 보통은 장남이 자연스럽게 상주가 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손자나 며느리가 상주가 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상주를 세우는 절차를 설정하였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상주를 정하기보다는 상례를 치르는 동안 책임을 지고 수행해야 할 역할을 분담하는 절차가 된다.
   
순서는 가장 먼저 상주를 세운다. 물론 장자가 상주가 되지만, 손자가 상주가 되는 승중承重의 경우도 있다. 아내의 상에는 남편이 되고, 장자나 장손이 없으면 차자나 차손이 주상이 된다.  

 ⑵ 주부(主婦)의 절차는 상례를 치르는 동안 여자들의 업무를 주관하는 책임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주부는 죽은 사람의 아내이다. 여의치 않으면 상주의 아내가 된다. 복인이란 상복을 입는 자를 말하는 것으로, 본종복인의 범위는 8촌 이내의 친족이고, 외족은 외사촌이내, 처족은 부모에 한한다.

 ⑶ 호상(護喪), 사서(司書), 사화(司貨) : 상주(喪主)가 갑자기 부모를 잃은 슬픔과 경황 중에 직접 상례(喪禮)의 일을 관리할 수 없으므로 대신해서 상(喪)을 주관하는 직책을 말한다. 예(禮)에 밝고 경험이 많은 어른을 호상(護喪)으로 정하고 부고발송(訃告發送), 조객안내(弔客案內), 축문작성(祝文作成), 상가재물관리(喪家財物管理) 등을 맡아 상사(喪事)를 주관하게 한다.

 - 예전에는 호상소(護喪所)에 호상(護喪) 외에 사서(司書), 사화(司貨), 집례, 집사, 안내, 잡역 등을 두었으나 최근에는 호상(護喪) 이외에는 다른 직책을 두지 않는다. 조문객(弔問客)의 출입을 기록하는 책의 이름을, 부상(父喪)일 때는 조객록(弔客錄)이라고 하고, 모상(母喪)일 때는 조위록(弔慰錄)이라 한다. 부의금을 기록하는 책은 부의록(賻儀錄)이라 하는 등 상사에 모든 항목을 기록하였는데, 그 명칭을 달리 하였다.

 - 『예기(禮記)』「단궁(檀弓)」편 상(上)에 ‘두교의 어머니 상(喪)에 집안에 상례(相禮)를 세우지 않았는데, 소홀하게 한 것이라 여겼다.’는 구절의 소(疏)에, ‘효성스런 자식이 어버이의 상(喪)을 당하면 슬프고 혼미하여 다시 스스로 깨닫지 못하여 예절(禮節)과 일의 의식을 모두 모름지기 다른 사람이 도와서 인도해야 한다. 그러나 두교의 집에서 어머니가 죽었는데도 집안에 상례(相禮)를 세우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시의 사람들이 그 예(禮)에 있어서 대충하고 생략한 것이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 또한, 『구의』편에 ‘살펴보니 상사(喪事)에는 반드시 상례(相禮)가 있는 것이 오래되었는데, 하물며 예(禮)가 없어져서야 되겠는가? 사람의 집 자제(子弟)들이 반드시 모두 예(禮)를 알지 못하여 마땅히 친구에게 의논하고 혹은 마을의 예(禮)를 잘 아는 자 한 사람을 상례(相禮)로 삼으면 대체로 상사(喪事)가 모두 일을 처분할 수 있으니 그가 호상(護喪)으로 돕는다.’고 하였다.

- 또한 『주자어류(朱子語類)』에 ‘만약 상(喪)이 시작되는 일단을 다 행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애척(哀戚)과 곡읍(哭泣)의 정이 없을 것이니 누가 바야흐로 슬퍼하고 고통하며 황망하고 혼미한 지경에 무슨 심정으로 일일이 고례(古禮)의 번잡한 것들과 세밀한 것들을 모두 극진히 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 호상(護喪)이 있었던 것은 효자가 하는 것을 인도(引導)하기 위한 것이니 만약 효자가 일일이 고례(古禮)에 의거하고자 하여 반드시 몸소 하고 반드시 친히 해야 한다면 슬픔의 정(情)이 없게 될 것이다. 하물며 다만 지금의 시속(時俗)의 예(禮)에 의거한다 하여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니 다만 슬픈 정을 다하는 것일 뿐이다.’고 하였다.

현재 대학에서 관련된 강의를 진행하면서 전공학생들과 많은 토론을 하고 있다. 그중 특히 호상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수준으로 본다면 전통사회에서 진행하였던 예(禮)의 깊이가 더 깊은데도 호상(護喪)을 세웠는데, 전통 예법을 잘 모르는 오늘날 그 극진함을 다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호상(護喪)의 역할을 담당하는 장례지도사가 아닐까 한다. 그 명칭과 쓰임이야 어떻든 예를 다하고 다음세대에게 우리의 올바른 죽음의례를 알려준다는 관점에서 그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이 아닐 수 없다. 어린 학생들이 죽음과 의례를 공부하고 우리의 가치를 찾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머리가 숙연해 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매일 연구실의 문턱을 깎아내며 찾는 어린 제자들이 반가울 따름이다. 최근 국가는 의례의 중요성을 인식한 때문인지, 장례지도사를 국가자격으로 통제하고자 하였다. 늦은 감은 있으나 그나마 올바른 선택이 아닐까 한다. 물론 그들이 습득해야하는 학문의 범위를 좀 더 넓이고, 깊이를 더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남겨진 몫일지라도 일단은 시작되어 진행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계 속>

이 철 영 을지대학교 장례지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