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흙에 혼을 넣다 흙이 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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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3-1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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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은 생명의 원천이다. 목숨이 있는 것은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 그 흙을 다루는 것은 장인의 손이다. 흙은 그냥 두면 흙이지만, 흙에 감성을 불어 넣으면 보석이 된다.”
전통 도예가이자 조선시대 막사발이었던 분청사기를 재현해낸 사기장(옛 그릇을 굽는 도예가) 신정희 선생. 그가 18일 77살을 일기로 별세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는 고인에 대해 스님에게만 행하는 다비식을 22일 치른다. 고인의 가마가 통도사 바로 인근에 있어 승려들과의 막역한 교류가 있었고, 또 전통 도자기를 통해 다기와 다도문화 정착에 기여한 공로 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경남 사천에서 2남3녀 중 넷째로 태어난 고인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 때 학업을 포기했다. 그의 인생은 당시 삼천포중 국어교사이던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 선생을 만나면서 달라졌다. 김 선생이 학생들을 데리고 가던 중 냇가에서 우연히 청자 파편을 주워들고 외쳤다. “이게 바로 고려청자 쪼가리다. 여기에 우리 조상들의 혼과 얼이 담겨 있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이 바로 이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흔한 사금파리 ‘일본국보’에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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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는 내 종교”…다비식 장례

그는 당시만 해도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고, 오히려 산과 밭에 지천으로 널려 있어 귀찮아 하던 청자와 백자 조각이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자 자긍심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에 눈을 떴다. 6·25 참전으로 입대해 8년 동안의 군 생활을 마치고 귀가한 그는 1962년 부산 골동품점에서 만난 한 일본인이 가지고 있던 〈고려다완〉이라는 책을 보고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숱하게 봐 왔던 사금파리들이 일본에서는 도자기 국보로 지정돼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책에 실려 있던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다완(찻잔)에 온통 정신이 팔렸다. “이것을 재현해 내자!” 그때부터 전국 200여 곳의 옛 가마터를 찾아 헤맸다. 숱한 고난과 고비 끝에 그는 68년 석회석을 불에 구운 가루에다 나뭇잎 재를 섞어 만든 나무재 유약을 천신만고 끝에 알아냈고, 그것으로 조선시대의 제사용 기물이었던 ‘이도다완’을 재현해 냈다. 60년대 중반 한-일 국교 정상화 바람과 함께 일본과 산업·인적 교류가 늘어나면서 전통 도자기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신 선생은 가마터를 경남 양산 통도사 인근의 터로 옮겨 9칸 가마를 지었다. 그는 “도자기는 내 인생이고, 나의 종교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자주 말했다. 스승 없이 자신의 감과 집념으로 도자기를 배운 만큼 도자기 철학도 매우 엄격했다. 제자가 되겠다고 가마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사람이 되라”고 했다. 그리고 “흙에서 꼬신 내를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왕 하려면 죽기 살기로 하라는 것이었다. 큰 아들 한균과 용균, 경균, 봉균 등 네 아들과 12명의 제자들이 그의 도맥을 잇고 있다.

그의 작품에 대한 진가는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훨씬 먼저, 그리고 높게 평가받아 왔다. 1976년에는 일본 쇼와왕의 동생인 다카마츠노미야의 초청을 받기도 했으며, 해마다 일본에서 한두 차례의 초대전을 열었다. 1978년에는 일본에서 한국의 인간문화재 격인 〈일본명사명류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이었다.

어릴 때 워낙 먹지 못해 늙어서도 가장 맛있는 음식이 ‘자장면’이라고 말하던 그가 이제 다시 흙으로 돌아갔다. 그는 도자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담은 〈흙과 불 그리고 혼, 사기장 신정희〉라는 자서전(북인 출간)을 내놓고 이날 이승을 떠났다.

이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