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지켜주는 가족처럼·도심 속 명품 추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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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편집국장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22-06-27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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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지리로 살펴보는 (재)울산공원묘원- 
배산임수(背山臨水)·좌청룡우백호(左靑龍右白虎)·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최고 명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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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지관(明地官) 남사고(南師古) → 남산의 유래
남사고(南師古)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서 효행과 청렴으로 이름났으며, 평생 《소학(小學)》을 즐겨 읽었다. 역학(易學)·풍수(風水)·천문(天文)·복서(卜筮)·관상(觀相)의 비결에 도통하여 예언이 꼭 들어맞았다고 한다. 풍수학(風水學)에 조예가 깊어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많은 일화를 남겼다. 출생과 사망은 1509 ~ 1571이며, 본관은 영양 호는 격암이며 주요저서로 《격암일고(格庵逸稿》를 지었다.

▮ 국풍(國風) 성지(性智)
성지(性智) 1616년 조선후기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승려이며, 나라의 풍수를 책임지는 큰 스님이라는 국풍(國風)으로서 조선왕조의 국운을 위해 명당을 돌아보던 중 울산 남산 일대의 지세를 파악하던 지관(地官)으로서 팔도를 배회하던 중 울산 옥동의 남산 12봉에 이르러 남사고라는 학자가 왕생지라고 한 골을 보고 진정한 왕생지라고 하여 남산 3봉과 5봉 사이의 여천천 발원지까지의 골짜기가 훗날 '성지골(性智谷)'이라고 일컬어지게 된다.

▮ 성지골(性智谷)의 산(山)
①남산 12봉(峰)
남암지맥에서 뻗은 삼호산에서 북쪽은 와와마을과 태화강을 따라 이어지고, 남으로는 격동마을을 품에 안은 산이 남산 일대의 12봉우리다.
옛날 남사고(南師古)가 전국을 유랑하며 울산에 이르러 삼호산에서 지세를 파악할 때 12봉우리 아래 명지(名地)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남산 12봉이다. 조선시대 정조 4년(1780년) 태화강 북쪽인 부내면(府內面)의 남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남산이라 불렀다. 남암지맥의 지세는 영출산에서 구슬고개로 흘러내려 우뚝 솟은 삼호산을 시작으로 해발 100m 이상의 봉우리 12개를 만들어 놓았다. 남산 12봉 중 1봉에서 9봉까지는 남구 옥동 격동마을에, 나머지 3개는 신정동에 위치해 있다.
남산12봉은 현재 1봉과 3봉, 4봉의 일부는 옥동공원묘원이 조성되면서 편입됐고, 5봉에는 삼호정(三湖亭)이라는 팔각정이 2008년 11월 건립됐다. 또 10봉과 12봉에는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12봉에는 현재 은월산(隱月山)이라 불리며, 솔마루정이 건립되어 있다. 7봉 아래에는 예비군 교육훈련장,소규모 공동묘지 등이 있으며, 11봉에는 방송안테나가 설치돼 있다. 12봉에는 은월루(隱月樓)가 건립돼 있다.
②백토산(白土山)·용미등(龍尾嶝)
용미등이란 지명은 울산대공원과 울산공원묘원 안에 솔마루길이란 울산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트레킹 코스 둘레길을 조성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백토는 사기그릇을 만드는 원료로 사용하거나 예전에 추석 전에 해마다 하는 벽체, 방바닥을 보수하는데 사용했는데, 이런 백토는 토질로서 장사(葬事)에서 고인을 묻는 하관할 때 중요한 재질의 흙으로 쓰이기에 예부터 최상의 하관할 때 흙으로 쓰인다.

▮ 성지골(性智谷)의 길(路)
'된고개길'은 격동마을 주민들이 와와마을 앞들의 논을 경작하거나 길흉사 등을 위해 윗각단 마을로 오가던 지금길이다. 이곳은 경사가 심해 왕래하는데 숨이 찬다고 해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으며, 현재 울산공원묘원 납골당이 건립되는 여천천 발원지까지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 와와마을 주민들은 나무를 할 때 이 길을 이용했으며, 삼호산 아래의 성지골 재집터에 기와조각이 나와 놋그릇을 닦는데 사용한 것은 이 길을 통해 왕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지금은 울산 시민들의 산책로인 ‘솔마루길’로 이용하고 있다.
한편 '풍로(風路)길'은 태화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 골짜기 길을 따라 격동마을로 넘어온다고 하여 일컫는 지명이다. 격동마을 주민들이 와와마을에 있는 논밭을 경작하기 위해 이 길을 이용했다. 이곳 격동마을 할머니들은 태화강에 이른바 용왕먹이기를 할 때와 삼호마을과 구영리로 갈 때도 이 길을 이용했는데, 현재 이 길은 공원묘원 계획으로 인한 도시계획화 되면서 울산공원묘원에 편입되어 일반 길로서의 필요성이 없어져 길로서의 기능은 폐쇄됐다.
풍수(風水)의 중요한 것이 곡식을 번성하게 하는 바람(風)과 낱알을 영글게 만드는 물(水)인데 풍로(風路)는 말 그대로 풍수로서 왕생지라고 하는 성지골의 풍수적 위상을 일컬어주고 있다.

▮ 성지골(性智谷)의 들(坪·野)
'대곡들·안못윗들'은 주로 논으로 형성된 큰골 입구를 일컫는다. 큰골 입구의 들을 예전에는 대곡형이라 부르다 안못이 조성된 이후 안못윗들이라 불렀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대곡평(大谷坪)으로 기록돼 있다. 이곳에서 학성이씨, 김해김씨, 청송심씨 등이 자경했는데 들의 규모는 작은 편이었다.
'안못밑들·격동들'은 1911년 이전까지 격동평 또는 격동들이라고 하다가 안못이 조성되면서 안못밑들이라 불렀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격동평(格洞坪)으로 기록돼 있다.

▮ 성지골(性智谷)의 공공시설
현재 성지골 주변에는 행정구역 상 옥동에 위치하며, 공공기관으로는 부산고등법원 울산지원, 울산지방법원, 울산검찰청, 울산남부도서관, 울산보훈지청, 울산노동지청, 울산환경연구원, 울주문화원 등이 있으며, 울주군청이 있었다. 또 울산의 도심 자연테마공원인 울산대공원이 있고, 국가정원인 태화강국가정원과 울산체육공원도 있다.
교육시설로는 격동초등과 남산초등, 옥동초등, 옥서초등이 있고, 신정중과 옥동중, 성광여고, 울산제일고, 옥동교육단지와 울산과학관 등도 입지해 있다. 이 밖에 울산공원묘원과 문수국제양궁장, 문수축구경기장, 문수야구장 등이 위치해 있다.이런 명당(明堂)으로서의 특혜를 받는 곳으로써 성지골(性智谷)은 위상이 남다른 지세(地勢)를 갖추어 근대 이후 울산이 시로 또 광역도시로 발전할 때 성지골 주변에 사법과 행정 그리고 교육과 환경 생태의 중심지가 되어 울산 지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일류 주거지로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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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공원묘원의 풍수(風水)
울산공원묘원은 명당(明堂)으로써 입지를 따질 수 있는 배산임수(背山臨水)와 좌청룡우백호(左靑龍右白虎) 그리고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형국을 가진 최고의 명당지이다.
먼저 배산임수(背山臨水)로는 주산(南朱雀)인 신선산(神仙山)을 바라보며 명당수인 여천천(呂川川) 발원지를 두고 풍요로운 여신이 누워서 생명을 놓는 형상을 띈 지세를 가지며, 평균 10도 미만의 경사면을 가진 평탄지로써 한국의 대표적인 집단 매장묘지로써는 유일무이하게도 높은 구릉지대에 평지를 가진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 황금 닭이 사랑스런 알을 품고 있는 지형의 명당지)의 지대이다. 머리 받침의 산은 정조 때부터 불린 울산 남산(南山) 4봉이며, 이를 바탕으로 태화강(太和江)이 울산공원묘원을 휘감아서 보호해주는 천연의 명당 주류(主流)로 위치하고 있다.
여천천(呂川川) 발원지를 명당수(明堂水)로 주산인 신선산(神仙山)의 선암수변공원의 풍부한 수원지를 주산의 명당수(明堂水)로 가진 울산공원묘원은 은월산(隱月山)을 내청룡(內靑龍)으로 삼호산(三湖山)을 내백호(內白虎)로 가져 명당으로의 최적의 입지조건을 가진 것 외에 최고의 명당지에 꼽히는 외청룡외백호(外靑龍外白虎)를 가진 형국의 최고의 명당으로 무룡산(舞龍山)을 외청룡(外靑龍)으로 고 신격호 회장이 영면하신 영축산(靈鷲山)을 외백호(外白虎)로 가진 취적의 명당으로 대지의 여신이 누운 머리 맡에는 가지산자락의 신불산(神佛山)이 북현무(北玄武)로 자리하고 있다.

▮ 14지역 위치와 형국
14지역은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며 고인의 머리가 서쪽을 바라보는 서향의 자리이다. 이 곳은 삼호산의 최정상 부분에 위치하며, 경주 감포에 위치한 문무대왕릉을 바라보는 곳으로 동해 용왕의 기상을 품고 있는 곳이다.
17지역과 18지역 그리고 19지역은 대지의 여신 머리와 가슴에 나부끼는 머릿결을 형상으로 가지며, 신선산을 또렷이 보며 멀리 동구 방어진의 꽃바위에 위치한 현대중공업의 자회사 삼호중공업의 대형 골리앗크레인과 울산대교가 보이며, 한국비료 등의 굴뚝 등이 보이는 울산공원묘원의 대표적인 명당지로써 은월산과 삼호산을 내청룡내백호로 그리고 무룡산과 영축산을 외청룡 외백호로 가진 금계포란형의 대표적인 풍수 명당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