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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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24-06-0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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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호 한국 CSF 발전 연구원장(시인. 상담학박사)

 

1970년 초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마을은 오래된 마을로 4개 면((面) 사람이 군청 소재지로 가려면 그 마을을 지나가야 했다. 일제 후반기에 그 마을에서 도의원이 두명이나 나왔다. 그 당시 도의원이 나온 마을은 수탈이 심하지 않았다. 공출이나 부역을 메기는 일에 도의원의 역할이 컸다. 한 도의원은 젊은 시절 일본에서 유학했다. 유학 시절에 만난 일본 여인과 결혼해서 귀국한 다음 광산업과 일본으로 물자를 실어 나르는 조선업을 했다. 일본인 아내는 남편이 조선업을 시작하자 사업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편의 시설을 겸한 유흥업소를 했다. 

두 사람은 많은 돈을 벌었다. 어느 지방 항구 도시에 자리를 잡고 학교를 세우고 지역 경제를 위해 많은 일들을 했었다. 그런데 일본인 아내가 아기를 낳지 못했다. 시름시름 앓다가 30살 전후에 죽었다. 아내는 죽기 전에 유흥업소를 총괄하는 일본 여인에게 남편을 부탁했다. 그 여인은 해방이 되자 열 살짜리 아들을 도의원에게 맡기고 일본으로 가버렸다. 해방되자 도의원은 열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그 아들이 도의원 아들이 아니라고 했다. 침묵의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 도의원은 그 아들을 자기 호적에 입적시켰다. 

돌아온 도의원은 지역 건준 위원장을 맡았고 정부가 수립되자 군정 고문을 지냈다. 그리고 6.25가 터졌다. 그 도의원은 난리 통에서도 살아남았다. 일제 시절, 지역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헌신을 한 것을 안 사람들의 적극적인 변호로 인민군이 살려 주었다. 시간이 흘러 그 아들이 아버지의 후광을 엎고 건달이 되었다. 건달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는 혼돈의 시간에 대활약한다. 

그러면서 못된 짓도 많이 했었다. 4개 면 사람이 그 마을을 지나 읍내로 가려면 건달패의 모임인 청년 동맹에 통행세를 내어야 했다. 그런 고약한 권세도 몇 년을 가지 못했다. 그들은 그 일을 못 하게 되자 10여 살 많은 사람과 손을 잡는다. 그 당시 마을 구장(리장)은 행정의 말단 책임자였다. 면 소재지인 그 마을의 난장 터에는 오일장이 열린다. 그 오일장 만든 사람이 일제 시절 도의원을 했던 사람이다. 여기서 나오는 장세(場稅)는 마을 기금으로 사용되었다. 해방되고 장세의 징수 권한이 면장한테로 돌아갔다. 장세를 거두어서 면 살림에 보탠다는 명목이었다. 그 도의원이 군정 고문을 하던 시절, 다시 마을 기금으로 쓰이도록 했다. 그런데 장세를 징수하는 사람에게 조건이 있었다. 동민의 2/3 이상의 신임을 얻는 사람에게 장세를 걷는 수탁 일을 맡겼다. 10여 살 많은 사람이 건달패와 손을 잡고 동민의 동의받아서 장세 걷는 일을 청년 동맹이 하도록 했다. 

그러자 조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장세를 걷어서 착복하는 수단으로 동민의 2/3 동의를 받는 일을 했다. 그 후 10월 유신이 선포되고 마을마다 새마을 사업을 하게 된다. 정부에서 주는 것은 시멘트와 철근이었다. 그 외는 주민들의 노력으로 길을 넓히고 초가집을 개선해야 했다, 그런데 건달패는 정부에서 주는 자재를 훔치기로 모의한다. 주민의 2/3 동의만 얻으면 그 일도 할 줄 알았다. 마을 민심이 흉흉해지자 전체 회의를 소집해서 그 사람들의 권한을 박탈하자는 소리가 나왔다. 모인 사람을 성원으로 투표하여 그 자리에서 개표해서 결정하기로 했다. 전체 회의가 소집되어 투표하고 공개 개표를 했다. 새로운 대표자가 선임되었다. 그리고 그 패거리들이 벌였던 일들을 감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며칠 후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10살이 많은 그 사람은 자기 가족을 데리고 경기도 어디로 야반도주했다. 건달패 우두머리와 행동 대장은 고소당해서 구속되었다. 그 당시 법은 도주한 사람의 소재를 알 수 없으면 구속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조작으로 권력을 가졌든 그들의 결말은 엄중한 심판을 받고 말았다. 조작이 얼마나 무서운 짓인가를 알게 된 그 마을 사람들은 그 이후부터 마을 선거는 직접 투표해서 그 자리에서 개표하여 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지키기로 했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집단 지성은 인간에게서만 나온다. 필자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인간은 영을 가진 존재임을 늘 강조한다, 영을 가진 인간은 영적으로 나타나는 지성을 가진다. 영적 지성은 분산되는 것처럼 보여도 결과는 하나로 나타난다. 집단 지성은 조작되고 오염되지 않으면 분명히 나타난다.

요즘 종교단체에서 행하는 각종 투표는 그 자리에 참여한 사람을 성원으로 하여 투표하고 그 자리에서 개표해서 결정한다. 한때는 우편 투표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우편 투표는 무조건 조작 가능성이 나타났다. 그래서 투표 자리에 참석한 사람을 성원으로 투표해서 결정한다. 그럴 때 집단 지성인 영적 지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과 짐승의 또 다른 점은 인간은 스스로 잘못된 것을 개선한다. 인간은 말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동물도 말할 수 없고 글을 쓸 수 없다. 다른 나라 말이나 글을 번역하여 자기 나라말로 나타낼 수 없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다른 나라 말을 번역하고 자기 나라말로 할 수 있다. 그런 인간에게서 집단 지성을 빼앗는 행위는 창조 질서를 거부하는 일이고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이다. 

창조주는 인간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심판관에게 고유 능력과 책임을 부여했다. 아무리 엉망인 제도를 가진 집단이라도 심판관이 있다. 고대국가는 심판관의 권한을 족장이나 제사장에게 부여했다. 그 흔적은 신라 왕들의 호칭에서 볼 수 있다. 심판관이 심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조직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조선의 몰락은 궁극적으로 심판 권한을 가진 자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원의 판사, 선거관리위원회, 감사원 같은 조직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면 그 나라는 망할 징조가 보이는 것이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여러 일들에 대해 법으로 보호받는 이 나라 심판기관들이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보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많은 고민이 필요할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