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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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21-04-2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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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虛勢)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를 과시하고 뽐내기를 좋아한다. 필자가 자란 동네에 건달패의 짱이 있었다. 그 사람의 아버지는 해방 후 도의원을 했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아들의 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시절에 대처에서 크게 사업을 할 때 일본 주점 기생에게서 얻은 아들이라고 했다. 해방 후 아버지가 고향에서 도의원으로 당선되자 그 아들을 데려왔다. 그 아들은 공부하기를 싫어했다. 동네 주먹패들과 단짝이 되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지역 건달패의 짱이 되었다.
 
건달패의 짱은 6.25가 지나고 얼마 후부터 면 소재지인 자기 동네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통행세를 받기 시작했다. 어수선하던 그 시절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못된 짓만 골라가면서 했다. 나이가 들어도 장가를 못가던 그 짱이 여자를 만났다. 도의원 아들의 결혼식은 마을이 흥청거릴 정도로 성대했다. 결혼한 다음 짱의 부인은 시아버지의 후광을 철저히 배격하고 자립을 선언했다. 얼마 후 짱은 건달패와 결별하고 골짜기를 막아 저수지를 만드는 공사장 감독이 되었다. 부부는 열심히 일해서 몇 년 후 그럴듯한 집을 짓더니 아들 둘, 딸 하나를 타지로 유학을 보냈다.
 
어느 해, 면민의 날에 과거의 짱이 자기가 저질렀던 잘못을 면민 앞에서 고백하고 사죄를 구했다. 그 자리에서 무식을 감추기 위해서 센척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의 허세들을 모두 용서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 사람은 죽어도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변했다. 확실히 변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그는 면 소재지 중고등학교 이사장이 되었다. 그 후로 고향을 위해 많은 일을 했었다. 동네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살다가 80 어간에 죽었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팔자가 이만하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다. 유학자들이 신봉하던 논어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일하기 싫어하던 좀팽이 양반들이 허세를 부리면서 즐겨 사용하던 구절이다. 그런 그들이 유학자랍시고 귀신은 인정하지 않았다. 귀신을 부정하던 그들이 제사를 지냈다. 그들은 제사를 제례(祭禮)라고 했다. 제사 지내는 예법과 절차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조상의 영혼을 만났다고 했다. 조상의 영혼은 귀신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제사의 변질은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났다. 농경사회의 힘은 사람 수였다. 사람이 모이면 힘이 생긴다. 그 힘이 세력이 되고 허세를 부리는 도구가 되었다. 제례는 사람을 모으는 고리가 되었다. 허세를 부리는 깔판이 되었다. 또 다른 변질은 조선말 양반들에게 나타난 풍수 사상의 한 축으로 작용 되어 선산 싸움(묫자리 소송 문제)의 뿌리가 되었다. 이런 허세가 우리 정신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합리적인 사고 속에서도 허세가 나타난다.
 
허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까지 연결된다. 고려의 불교가 후반기에 이르러 탐욕스러운 신앙으로 바뀌었다. 또한, 내세 신앙인 미륵불 사상은 말세의 징조를 보였다. 고려가 망할 때쯤에는 조정 대신들과 지방 관리들까지 승려화가 되었다. 그 영향으로 사내들은 자식 낳는 일까지 팽개쳤다. 그 이면에는 대를 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아기를 낳고 싶은 간절함에 공공연한 간통과 사통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심지어 인륜 경시 풍조 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간통과 사통의 문제는 모든 부분에 영향을 주어 심각한 정치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하였다. 성리학과 주자학을 명분으로 삼은 고려 후기 유학자들은 이런 엄청난 종교의 타락과 비인륜적,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개탄했다.
 
그 영향은 많은 유학자에게 새로운 질서의 변화를 요구했다. 그 결과가 역성혁명으로 나타난 조선의 건국이다. 조선은 숭유억불로 새로운 양태의 도덕 정치를 표방했다. 유학의 나라 조선이 도입한 도덕 정치가 일반 민중에게로 온전히 들어온 시점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친 다음으로 본다. 무수한 전쟁고아와 미망인에 대한 처리 문제는 축첩과 서자를 허용하는 고도로 계산된 유학통치 이념 아래 이루어진 행위이다. 그 후 일반인들에게까지 파고든 유학의 변종들은 거들먹거리는 허세와 유세 정치로 나타났다.
 
그 전형적인 풍자가 양반걸음이다. 문제는 양반걸음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과시용으로 바뀌었다. 못 먹어도 를 외치고 사글세 단칸방에 살아도 자가용을 끌어야 직성이 풀리는 묘한 심리구조, 내실보다 외형을 따지고 옷 잘 입은 사람이 대우받는 세상, 돈만 있으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가 된다는 허황된 생각들이 허세에서 나오는 것이다. 왕조 말, 세기말의 풍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잘 먹고 잘살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1950~60년대 보릿고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눈물 젖은 보리 개떡 맛을 어떻게 알겠는가? 요즘 2~30대와 청소년, 자라는 아이들이 풀죽도 못 먹던 시절, 밥을 못 먹어 올챙이 배가 되어 앉아 있던 아이들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그 시절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잘 먹고 잘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경제 부흥이 최고인 줄 알았다. 먹고 살 만하게 되자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인가를 걱정한다.
 
작금에 들어 나라가 망할 때 나타나는 징조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허세 정치가 판을 치고 그 판을 기웃거리는 건달들이 등장한다. 무덤 판을 걱정하던 국토가 허세들의 투기판이 되고 공동체 전체가 걱정해야 할 인구 절벽문제를 오히려 2~30대가 걱정한다. 문제는 허세가 사람을 죽이고 공동체도 망하게 할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잘난 자들의 무식을 가장한 허세이다. 유식이 무식을 가장하고 허세를 부리면 괴물이 된다. 허업을 가진 자들의 허세가 나라를 망칠 것이다.
 
한국 CSF 발전 연구원장/박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