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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4-23 07:33
일본, 죽음을 준비한다
 글쓴이 : 한국장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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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수중에 15만엔 밖에 없으니 화장하고 무연(無緣) 사찰에 안장해주시겠어요? 저를 맡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소베 히로(가명)씨는 한 장의 유서로 82년간의 삶을 마쳤다. 그는 유쾌한 농담을 잘해 동네에서 인기 좋은 할아버지였고 또한 솜씨 좋은 페인트공이었다. 갑작스런 혈뇨로 검사를 받고 전립선암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3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한 장의 A4 용지에 다급하게 써내려간 한 줄의 글을 남긴 후 고독사했다. 연락이 닿는 가족이나 친척이 없었기에 그는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공영 무연고 납골당서 깊이 잠들었다.

요코스카 시청 생활복지부 키타미 카즈유키 차장은 이소베씨의 유서를 장례 후 6개월이 지나서야 발견했다. 

카즈유키 차장은 “우리는 이소베씨를 시에서 주관하는 무연고 장례 절차대로 화장하고 납골당에 안치했어요. 생전 그가 불자인 줄 알았다면 장례식에서 독경(讀經)이라도 해드릴 것을…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습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요코스카시에는 길이 40m, 높이 3m 크기에 해당하는 큰 규모의 무연고 납골당이 있다. 역사적인 이유다. 도쿄만 입구에 위치한 요코스카 시는 1853년 미국과 미일 화친조약을 맺고 개방한 항구 도시다. 개방 이후 물자 이동이 활발해지고 해군기지가 생기면서 항구 일대에 유곽이 형성됐다. 세월이 흘러 유곽의 이름 없는 여인들은 무연고로 죽음을 맞이했고 이들을 위한 대형 납골당이 생긴 것이다. 

무연고 납골당의 오래된 유골을 정리하던 카즈유키 차장은 이들의 죽음을 목도했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카즈유키 차장과 뜻에 힘을 실어준 요코스카 시청은 일본 공공기관 내 처음으로 ‘누구도 혼자 두지 않겠다(誰もひとりにさせない)’라는 표어를 내걸고 시민을 상대로 ‘엔딩활동’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엔딩활동’이란 고령화 사회 일본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죽음을 생전에 준비하자는 개념으로 젊은이들의 취업 활동((就活)과 동음이의어인 ‘슈카츠’(종활·終活)로도 불린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요코스카 시의 ‘종활(終活)정보 등록전달사업’은 시민이라면 연령, 소득, 자산, 친척의 유무 관계없이 무료로 자신의 기록(본적, 긴급연락망, 활동 커뮤니티, 담당의사 연락처, 장례 방법, 유서 보관 장소 등)을 등록할 수 있다. 

현재 요코스카 시민 110명이 등록했고 그중 1명의 등록자가 얼마 전 사망했다. 카즈유키 차장은 생전에 남겨둔 등록 기록으로 하나뿐인 고인의 조카에게 부고 연락이 갔으며 남겨진 유언에 따라 장례식을 치뤘다고 전한다. 

일본국립사회보험 인구문제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현시점 일본 고령화 비율은 30% 이상 진행되고 있다. 혼자 사는 고령자가 1만 명을 넘었고 2040년에 인구의 40%는 1인 가구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18년도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14.2%로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1인 가구는 지속 증가해 2017년 전체 가구의 28.6%이고 2020년 600만 가구, 2030년 700만 가구, 2045년 800만 가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당신은 당신의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두고 죽을 수 있습니까?” ‘디지털 유품’ 사후 취급을 생각하는 단체 ‘디지털 종활협회’ 대표이자 변호사 이세다 아쓰시씨의 명함 뒷면에 쓰인 문구이다.

 

이세다 대표는 ‘디지털 엔딩활동’을 전파하며 이것이 꼭 필요한 이유를 두 가지 사건을 들며 설명했다.

 

“2017년 일본에서는 프리 여자 아나운서와 불륜관계에 있던 남성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어요. 불륜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사망자의 아내가 남편의 스마트폰에 남겨진 사진을 공개했기 때문이에요. 그 아나운서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어요. 유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적인 사진, 그것은 남겨선 안 될 데이터였죠.”

 

반대로 디지털 데이터를 남겨야 했던 사건도 있었다. 지난 2월 캐나다 최대 규모 가상화폐 거래소 쿼드리가씨엑스(QuadrigaCX)의 제럴드 코튼 대표가 사망했다. 그 어느 곳에도 그가 운용하는 가상화폐가 담긴 전자지갑의 비번을 남기지 않아 한화 1,600억 원 상당의 가상화폐가 공중분해된 것. 이는 가상화폐 시장에 악재로 작용했다.

 

우리 생활에서 컴퓨터, 스마트폰, 타블렛 PC는 필수 아이템이 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과 글을 올리는 행위만으로 우리 모두는 부지런한 ‘디지털 데이터’ 생산자다. 사후에도 우리가 생산한 데이터들은 온라인 공간을 떠돌 것이다.

 

디지털 데이터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PC·스마트폰에 존재하는 ‘오프라인 데이터’와 SNS 계정 등에 존재하는 ‘온라인 데이터’다. 이를 염두해두고 정리해나간다.

 

오프라인 데이터를 위해 먼저 나의 컴퓨터에 어떤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는지 작성해본다. ‘절대로 남긴다’, ‘남긴다’, ‘숨긴다’, ‘절대로 숨긴다’ 4단계 레벨로 나눈 뒤 각각 분류에 대한 대응을 엔딩노트에 기록한다. 가족이 알면 상처받을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믿을 수 있는 제 3자에게 기록해놓은 엔딩노트를 맡긴다.

 

온라인 데이터에 속하는 블로그나 홈페이지, 개인 SNS는 사후 범죄에 악용될 수 있으니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개인 연락처를 모른 채 SNS로만 소통하는 지인들도 늘고 있다. ‘만일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지인 관계를 정리해 가족에게 남겨놓는 것 또한 디지털 엔딩활동이다.

 

고쿠요 출판사는 2009년에 처음 ‘엔딩노트’ 책을 만들어왔다. 최근 발간한 ‘엔딩노트’의 정식 제목은 ‘만일의 경우 도움이 되는 노트(もしもの時に役立つノ-ト)’다. 마지막을 뜻하는 ‘엔딩’이나 무거운 ‘유언’이라는 단어 대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친근하고 유용한 느낌을 살려 책 제목을 정했다. 출판사 관계자 측은 “실제로 자신의 것은 물론 가족과 친구 혹은 지인에게 선물용으로 구입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한다.

 

‘엔딩노트’ 기획자는 “학창시절 법률상담 자원봉사를 경험이 있다. 스스로 유언장을 남기고 싶은 사람들의 상담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착안했다. 유언장을 쓰고 싶지만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내용을 써내려가야 하는지 막막해지면 이내 의욕을 잃고 만다. ‘엔딩노트’는 마음 먹은 분들이 순조롭게 써내려갈 수 있도록 제작했다”고 설명한다.

 

일본에서 ‘엔딩노트’는 2019년 2월 말 기준으로 135만 부를 돌파했다. 구매층은 20~50대 35%, 60대 28.7%, 70~80대 32.4%로 엔딩활동에 의식이 높은 고령자의 구입이 대부분이지만 젊은 세대의 구매도 적지 않다.

 

직접 살펴본 ‘엔딩노트’는 ‘나’에 대한 다양하고 자세한 기록을 요하고 있었다. 나의 계좌, 부동산 정보, 대출, 카드 정보 같은 재산 목록은 물론 희망하는 인생연표, 취미, 추억, 장례식 방법까지 ‘나를 남기고 싶다’ 인간의 본연에 응답하기 위한 구성이다.

 

“우울증으로 살아갈 힘이 없어 쓰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자신을 되돌아보고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38세 남성),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써놨기에 마음이 놓입니다”(63세 여성), “유언장을 작성하니 마음이 개운해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어요”(40세 여성) ‘엔딩노트’ 구매자 앙케이트 엽서 발췌한 의견들이다.

대부분 ‘삶의 끝’보다는 ‘삶’ 자체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는 감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다른 말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엔딩활동으로 두 개의 생각을 잇는 연결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 일본서 만난 엔딩활동가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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